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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인력을 발휘하는 화면은 뒤편 객석 관객들까지도 링사이드에 바짝 다가앉은 관중으로 바꾸어 놓는다. 강타를 허용한 복서의 몸에서 흩뿌려지는 땀방울들을 흠뻑 맞을 듯한 사실감을 안기다가 결정적으로 어퍼컷을 날리는 순만 만큼은 마치 ‘지금 여러분이 지켜보고 있는 것은 영화다’라고 일부러 일깨워주려는 듯 너무도 ‘영화 같은’ 장면으로 승부한다.
영화 ‘사우스포’의 매력은 생중계를 보는 것 같은 현장감과 감각적인 타격감에서 나온다. 여기에 부성애를 녹여낸 것은 미덕이다. |
파이터의 세계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매력을 보탠다. 부성애다. 영화는 세계 챔피언이었던 빌리 호프(제이크 질렌홀)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내 모린(레이철 매캐덤스)를 잃고 하나뿐인 딸을 되찾기 위해 생애 가장 어려운 시합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부와 성공, 명예를 위해 시합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양육권을 되찾고 ‘진정한 아빠’로 거듭나기 위해 출전하는 한 남자의 내면적 성장과정을 카메라는 따라간다.
치고 받는 단순한 복싱 영화가 아니다. 촘촘하게 짜인 드라마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센 영화다. 권투를 싫어하거나 룰을 모르는 여성 관객도 탄탄한 재미에 무리없이 합승할 수 있다.
경기가 끝나면 뭉클한 감동이 기다린다. 자신을 극복하고 마침내 챔피언의 자리를 되찾은, 뒤늦게 아빠가 되는 법을 깨우친,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된 빌리가 딸에게 말한다. 희망찬 어조다.
“이제 집에 가자!”
경기 장면에 생명력을 부여한 주역은 제이크 질렌홀이다. 복싱을 전혀 모르던 그는 전작 ‘나이트 크롤러’ 때 보여준 앙상한 몸매에서 완벽한 복서의 몸으로 거듭났다. 매일 윗몸 일으키기 1100번, 턱걸이 100번, 스쿼트 100번을 해내며 복싱 기술을 익힌 그는 주인공의 심한 정서적 방황 또한 비중 있게 그린다. 자신의 쓸데없는 오기 때문에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약물을 복용하고 교통사고를 내는 등 망가져가는 모습으로 아내를 따라 죽고 싶은 남편의 심정을 처연하게 담아낸다.
포리스트 휘터커는 영화가 반이나 지나고서야 등장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으로 여전히 명품배우임을 입증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그렇듯이 그는 초라한 체육관을 운영하는 복싱코치 틱 역할로 나온다. 아내와 딸을 잃은 좌절감에 빠져 찾아온 빌리에게 방어에 강한 왼손잡이 복싱 기술을 전수한다. 혹독한 훈련과 용기를 북돋우는 말로 빌리가 분노를 극복하도록 돕는다. 그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칸국제영화제 등의 남우주연·조연상 수상자답게 캐릭터를 한 차원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내공을 펼쳐 보이며 진정한 멘토에 대해 생각케 한다.
앤투안 푸쿠아 감독은 스티비 원더, 어셔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밀러, 리복, 혼다 등의 CF 연출로 영상 테크닉을 다져온 베테랑이다. ‘영웅본색’의 우위썬(오우삼) 감독에게 발탁되어 영화 감독의 길에 들어 선 그는 저우룬파(주윤발) 주연의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로 데뷔하면서 홍콩 누아르 액션을 할리우드 스타일로 재창조했다. ‘트레이닝 데이’ ‘태양의 눈물’ ‘백악관 최후의 날’ ‘더 이퀼라이저’ 등의 작품들을 통해 선보인 현란하고 강렬한 액션 장면들은 국내팬에게도 친숙하다.
‘사우스포’는 야구나 권투 등의 경기에서 ‘왼손잡이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오른손잡이 선수가 주를 이루는 경기에서 사우스포는 종종 필살기 혹은 비장의 무기 역할을 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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