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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神’ 가우디, 자연 닮은 이상향을 빚다

입력 : 2015-12-09 10:00:00 수정 : 2015-12-09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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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30〉 페르소나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페르소나’의 한 장면.
#스웨덴 문화를 상징하는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가끔 ‘영화를 예술로 보느냐 오락으로 보느냐 혹은 예술적 오락으로 보느냐’며 언쟁을 한다. 사실 모두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딱히 맞는 말이 무엇인지 가리기 힘들기도 하다. 심심할 때 그냥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다.

나의 경우는 영화를 그냥 내키는 대로 걸어다니는 산책으로 본다. 아니 그런 관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렇게 실행한다. 나에게 영화란 오락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며 학구적인 탐구도 아니다.

딱히 놀 게 별로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너무 뻔한 동화책이나 명작이나 그런 책을 읽기는 싫고 그렇다고 마냥 놀자니 양심에 걸릴 때 주로 국어책을 읽었다. 그냥 읽었다. 사실 그 책이 그래도 제일 만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나마 조금 흥미가 가는 책은 역사교과서였는데, 왠지 그 안에 있는 내용은 읽기만 하면 안 되고 전부 외워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앞섰다.

그러나 국어 교과서는 그런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없었다. 산책이란 것이 목적 없는 걸음인 것처럼 국어책을 읽는 것도 나에겐 하나의 산책이었다. 국어시험을 잘 보고 싶다는 의지나 대단한 진리를 깨우치고자 함도 전혀 없는 순수한 낭독의 즐거움이었다.

그냥 산책하듯 설렁설렁 읽었는데, 참으로 묘하게도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글들이 여기저기에서 뽑고 또 뽑은 명문들이라서 그랬는지, 책에 있는 글들을 읽다보면 왠지 입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소득이라면 바로 그 '구강청량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것이 영화보기였다. 입장료가 싸거나 동네 가게에서 얻은 ‘초대권’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동네에 있는 이류·삼류 영화관을 다니며 무턱대고 영화를 봤다. 무협영화, 서부영화, 스릴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척 많이 봤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는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명화’들을 봤다. 사실 그 영화들은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왠지 보고 나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무언가 이루어낸 듯한 가슴 뿌듯함이 있었다. 그건 ‘청량감’에 비견되는 ‘포만감’이었다. 나는 그 ‘포만감’을 얻기 위해 온 식구가 다 자고 있던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 밤에 혼자 텔레비전 앞을 지키며 허벅지를 찔러가며 대책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고 대책 없이 졸린 그 영화들을 섭렵했다.

지적인 욕구는 그런 사소한 충만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중 최고는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였고 또 하나는 스웨덴의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 1957)이라는 무척 분위기가 어둡고 이야기 전개도 답답한 영화였다. 대충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알 것 같기는 한데, 대체 왜 영화로 저런 이야기를 저렇게 지루하고 길게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영화와는 별개로 내 머릿속을 배회하고 있었고, 지금도 베리만 감독을 생각하면 그때 본 흑백화면에 까만 옷을 입고 얼굴이 일본의 가면처럼 하얀 죽음의 사자가 떠오른다.

베리만은 그 자체가 스웨덴이고 상징이며 문화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2007년 그의 모든 기록, 시시콜콜한 신상자료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대단한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성 가족성당 서측 파사드(2009). 곳곳에 설치된 크레인을 디지털로 제거한 사진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영화, 페르소나


1918년 스웨덴 웁살라 지역에서 루터교 목사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될 무렵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오고 연극으로 시작해서 영화로 옮아간다. 1946년 그는 ‘위기’로 영화계에 데뷔하며, ‘제7의 봉인’으로 명성을 높이게 된다. 이후 존재에 대한 탐구와 구원 등의 철학적이며 매우 종교적인 주제를 영화의 골격으로 삼아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50년대 말과 60년대를 아우르는 모더니즘 영화의 중요한 인물로 부상한다.

‘페르소나’(persona)는 베리만이 1966년에 만든 영화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무척 심오하고 난해한 영화로 평가되며, 모더니즘 영화의 꼭대기에 놓인 영화이다.

줄거리는 갑자기 말을 잃은 영화배우 엘리자벳과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동행하는 간호사 알마가 등장하는 아주 단순한 설정이다. 엘리자벳은 말을 잃은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기가 싫은 것이라고 초반에 등장한 병원장이 설명한다. 그녀는 엘리자벳에게 병원을 떠나 자신의 별장에서 휴양하며 치료하라고 권유한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신은) ‘존재하기’를 부질없이 꿈꾸고 있죠. 남들 눈에 비친 모습 말고 당신 그대로의 존재 말이에요. 순간마다 긴장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게다가 남들과 있을 때의 자신과 혼자일 때의 자신의 괴리…. 당신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작동을 멈추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어떤 연기도 할 필요 없죠. 가식적인 표정도 몸짓도. 지금 숨은 곳은 완벽한 곳이 아니에요. 삶이 여기저기서 밀고들어올 테니 당신은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아무도 그게 현실인지 아닌지 진심인지 거짓인지 묻지 않아요. 그것들은 연극에서나 중요한 문제요.” - 영화 ‘페르소나’ 중에서

말을 하지 않는 배우와 말을 시키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간호사가 담백하고 추상적인 흑과 백의 화면에서 단속적으로 배열된다. 그러다 간호사가 어느 날 말을 하지 않는 배우가 자신을 관찰하고 분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마치 두 개의 자아가 분열되듯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심각한 갈등의 끝에 두 개의 자아는 통합된다. 두 사람의 얼굴을 반쪽씩 합성한 장면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이며 영화사에 길이 남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대개 베리만의 영화란 이런 식이었고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 역시 관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불친절함의 끝이었다.

그렇다면 ‘페르소나’란 무엇인가. 사회적인 인격이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페르소나는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페르소나는 본래의 자신이 아닌 사회적인 얼굴로 해석된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얼굴이 위선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어차피 인간은 사회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것은 거짓, 그렇게 흑백으로 가를 수 없는 것이다.

베리만은 ‘페르소나’라는 영화를 통해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본질을 덮는 거짓에 대한 불편함과 또한 그런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하는 또 하나의 자아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알마는 엘리자벳에게 이야기한다. “거짓말 안 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중요해요? 아무 말이나 하고 살면 안 되나요? 거짓말하고, 핑계를 대고 외면하고 살면 안 되나요? 게으르고, 너저분하고, 거짓말도 하면서 사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어차피 인간이란 큰바위 얼굴과 같은 자신을 규정하고 달성하고 싶은 ‘슈퍼에고’에 기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페르소나 ‘성 가족성당’ 스케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페르소나, 성 가족 성당

윌 듀란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페르소나라는 단어는 배우의 가면을 의미하는데, 나중에는 생전에 한 인간이 수행하던 역할에 적용되었다. 결국 페르소나는 사람 자신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그가 한 역할, 즉 그가 쓴 가면이나 가면들로만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결국 페르소나는 사회적 인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심리학자인 칼 융은 페르소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람 마음속의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아가 외부세계와 내면을 소통시키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사회의 행동규범이며 실천하는 주체라고 이야기한다.

영화감독에게는 페르소나가 배우를 통해 드러난다.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이고, 팀 버튼의 페르소나는 조니 뎁이며, 레오 카락스의 페르소나는 드니 라방이다. 배우들은 감독의 분신이며 감독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건축가의 페르소나는 무엇일까. 미스 반 데 로에의 페르소나는 절대공간이었으며, 루이 칸의 페르소나는 원초적이고 강력하며 침묵하는 공간이었으며, 프랭크 게리의 페르소나는 구부러지고 휘어진 몸이었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페르소나는 자연의 형상을 닮은 그의 건축이다. 지중해에 면한 카탈루냐 지방의 강렬한 햇빛과 풍부한 자연은 구리 세공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장인 기질을 갖고 있던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또한 그는 건축수업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지만(그래서 무척 힘겹게 졸업했다고 전해진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많은 책들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그는 “항상 열려 있으며 힘써 읽기에 적절한 위대한 책은 자연이다”라고 보았다. 그 밖의 책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해석하고 음미하여 이러한 특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빛을 모든 장식의 기초라고 보았고, 건축을 빛의 질서로 생각했다. 마침내 가우디는 신으로 향하는 빛을 꿈꾸었다. 대중들에게 가우디만큼 널리 알려진 건축가도 없을 것이고, 혹 가우디를 모르더라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성 가족성당(La Sagrada Familia)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882년 초석을 놓은 후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사 중이며 완성하려면 앞으로도 100년은 족히 걸릴 거라는 어마어마한 건축이다. 가우디는 1883년 빌랴르의 후임으로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이 성당의 공사감독으로 취임하여 1926년 사망할 때까지 거의 전 생애를 바쳤다.

“이 교회가 세워지는 중요한 이유는 신의 집과 기도와 명상의 집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을 종교적 감정의 표현과 연결시킬 수 있는 모체가 된 이 예술작품은 자신과 주위의 상황 속에서 적합한 장소를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교회는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넓게 열려진 공간이 될 것입니다.” - ‘가우디 공간의 환상’(안토니 가우디 지음/이종석 역/다빈치) 중에서

원래 빌랴르가 네오고딕 양식으로 구상했던 것을 가우디는 당시 가톨릭에 적합한 비잔틴 양식으로 바꾸었다. 원래 하나이던 탑을 네 개의 탑으로 늘리고 삼면에서 12사도를 표현하고 각각의 파사드를 예수의 생애와 부활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어떻게 구현해낼지를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성당의 모습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알았을 것이다. 가우디 사후에도 그의 예상대로 다른 이들이 이어받아 성당은 계속 지어지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라는 건축가가 꿈꾸었던 평생의 건축이었다. 또한 자신의 본질과 충돌하지 않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가우디의 표상이기도 하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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