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열리는 2016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결승전.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28)와 2위 앤디 머레이(영국·28)가 맞붙는다. 머레이는 메이저대회에서 조코비치와 30번 경기를 치러 9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결승전은 경기 외적인 이유로 외신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머레이는 대회 개막 전 “결승전 직전이라도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면 곧바로 짐을 싸겠다”고 공언했다. 우승컵보다 아내와 아기가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31일(현지시간) ‘아버지들이 출산을 함께 하기까지의 거리’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냈다. 머레이가 호주 멜버른에서 영국까지 가는 데 걸리는 비행시간은 약 23시간. BBC는 대부분 아기 아버지가 아기 어머니와 아기를 맞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기까진 수천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머레이는 지난해 4월 킴 시어스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의 첫 아기는 2월 중순쯤 태어날 예정이다. 아내와 아기 출산을 함께 하기 위해 경기를 포기한 스포츠선수는 머레이가 처음은 아니다.
세계랭킹 231위인 호주 출신 벤 미첼(24일)은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앞둔 지난달 경기를 포기했다. 그의 여자 친구가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져서다. 미첼은 “본선 진출권과 출전료 4만달러(약 4800만원)가 날아갔지만 내 딸의 출생을 지켜보는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의 크리켓선수 맷 프라이어는 2009년 출산을 앞둔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 ‘웨스트 인디스’ 입단 테스트를 포기했다. 프라이어는 “테스트에 참석했더라도 집중을 못해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입단테스트는) 숱한 경기 중 하나일 뿐이고 가족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럭비선수 윌 그린우드도 2003년 아내가 둘째 출산을 앞뒀다는 소식에 지체없이 호주 럭비월드컵 경기를 포기하고 짐을 쌌다. 잉글랜드 팀은 우승컵을 날려버렸지만 아무도 그를 “가족 때문에 경기를 포기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가족보다는 일이 우선인 사람도 있다. 영국 리버풀 축구선수 출신의 TV 해설가 존 반즈는 축구경기 해설을 위해 7번째 아기 출산을 포기했다. BBC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일과 가족 사이에서 반즈와 같은 선택을 한 예비아버지는 많았다. 병원에선 아버지가 분만실에 들어오는 것을 질색했고, 아기 아버지들도 산부인과에 있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일’이라며 꺼렸다.
분위기는 최근 들어 상당히 바뀌었다. 영국의 출산양육 기관인 국립출산트러스트(NCT)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의 예비아버지 97%가 아기가 태어나는 장소에 함께 한다. 1970년대 같은 조사에선 정반대였다. 엘리자베스 더프 NCT 선임연구원은 “당시 출산은 집에서 주로 이뤄졌는데, 대부분 아버지가 다른 방에 있거나 펍에 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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