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와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어머니가 방금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동생에게 들었거든요. 나쁜 소식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1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 25일 저녁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확정된 직후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두 번 놀랐다.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작자가 남성일 것으로 추측했는데 여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와서였고, 뜻밖에도 그 여성이 다른 이유로 당혹해하는 정황 때문이었다.
1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 25일 저녁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확정된 직후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두 번 놀랐다.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작자가 남성일 것으로 추측했는데 여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와서였고, 뜻밖에도 그 여성이 다른 이유로 당혹해하는 정황 때문이었다.
수상자 조영주(37)씨는 이내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당선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조씨는 알고보니 숭실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윤해환이라는 필명으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펼쳐온 추리작가였다. 단편 ‘귀가’로 2회 KBS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우수상도 받았다. 콘텐츠진흥원 원작소설 창작과정에 선정되기도 하고 예스24e-연재 공모전에서도 우수상을 받아 장편을 연재했다.
수상작 ‘붉은 소파’는 연쇄살인 과정에서 딸까지 희생된 주인공 사진작가가 살인 현장 사진을 찍으면서 사이코패스와 대결하는 이야기다. 사진을 매개로 차례로 범인을 찾아내고 치유를 향해 나아간다. 독일 사진작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의 사진집에서 영감을 받은 ‘붉은 소파’가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특별한 추억이 삼투된 붉은 소파를 세 번에 걸쳐 바꾸어 들고 다니며 그 위에 다양한 사람들을 앉히면서 긴장을 고조시켜나간다. “살인과 사진 그리고 비밀을 퍼즐 조각처럼 흩어두고 집중력 있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 나가면서 “살인, 사진, 실종, 기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흥미의 끈을 놓지 않으며 끝까지 독자들과 지적인 게임을” 하는 작품이다.
12회 세계문학상 수상자 조영주씨. 윤해환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집필해온 조씨는 “구원을 위해 소설을 쓴다”면서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문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
부친 조강타(61)씨는 영주씨 소개에 따르면 만화보다는 ‘특A급 스토리작가’로 더 각광을 받아왔다. 근년에는 독도와 명성황후에 관한 장편 ‘섬 799 805’와 ‘황후의 칼’도 펴냈다. 2010년 종로에서 소설 홍보 전단지에 천원짜리 지폐를 붙여 뿌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성장기부터 이야기 속에 살아온 영주씨는 일본 드라마 마니아이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자막도 만들고 리뷰하는 블로그를 5년 동안 운영하다 방문자들이 많아 귀찮아져서 지난해 5월 폐쇄하고 글쓰기에 집중한다고 한다. 그네는 14년차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낮에는 강남의 커피 체인점 두 군데를 돌며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틈만 나면 좋은 작품을 필사하고, 주로 주말에 소설 쓰기에 집중하는 편이다. 소설을 쓸 때는 아침에 일어나 구상이 흐트러질까봐 세수도 하지 않고 종일 초집중을 한다.
“20대 후반까지 어떤 소설을 써야 할지 방황하다가 추리소설이 저에게 제일 어울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최종심에 오르거나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이 돌아보니 모두 그런 쪽이더군요. 결정적으로는 20대 후반에 일본의 전설적인 미스터리 작품들을 접한 뒤 완전히 신념을 굳혔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읽고 감동받은 뒤 사회성 짙은 추리소설로 잘 알려진 마스모토 세이초(1909~1992)에 매료됐다고 한다. 한국 추리소설 역사가 100년이 넘는데 최초의 추리소설작가가 김내성(1909~1952)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집필한 김내성과 홈즈가 만나는 이야기가 2011년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받은 장편 ‘홈즈가 보낸 편지’이다. 그는 자신이 써온 소설들은 지금까지 대부분 인물들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 조영주 약력 ▲ 1979년 서울 출생 ▲ 2002년 숭실대 문예창작과 졸업 ▲ 2011년 제 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우수상 장편 ‘홈즈가 보낸 편지’ ▲ 2014년 제 2회 KBS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 추천우수상 수상 단편 ‘귀가’ ▲ 2015년 제 1회 예스24 e-연재 공모전 이야기 그리는 작가 우수상 수상 장편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 ▲ 장편 ‘홈즈가 보낸 편지’(2012) ‘트위터 탐정 설록수’(2013) ‘몽유도원기’(2015) 출간 |
추리소설 작가에 갇히지 않고 세계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이른바 ‘순문학’ 독자들과도 폭넓게 만날 계기를 마련한 그는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접한 뒤 고독한 인간의 숙명을 긍정하게 됐다”면서 “이 시를 표제로 써놓은 소설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건넨 명함 뒤편에도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로 이어지는 그 시편 제목이 굵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수상작은 해냄 출판사에서 올봄 출간될 예정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수상작 줄거리
사진작가 정순식의 인생엔 세 개의 붉은 소파가 등장한다. 첫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에게 사진이란 이름을 주었고, 두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의 삶에서 사진을 빼앗았고, 세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에게 다시 한 번 사진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그 모든 붉은 소파의 추억담이다. 정순식, 그는 디지털이라는 시류를 따르지 못한 퇴물 사진작가다. 월세도 내기 힘들겠다고 염려하던 정순식에게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제자로부터 짭짤한 보수의 일거리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 의뢰가 수상하다. 어디로 와라, 가라 하는 이야기도 정확하지 않다. 어떤 걸 찍느냐, 물었더니 알 수 없단다. 대충 인물사진이라는 어중된 대답이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지만 정순식은 일단 받아들이기로 한다. 매일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일력 한 장을 뜯고는 할 일이 없어 빈둥대는 일상보다 안 좋은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순식의 생각은 틀렸다. 이것은 자신이 생각한 안 좋은 일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제자가 소개시킨 일은 살인사건의 현장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그것도 피해자, 시체 사진을!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찰에서는 시체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를 구했다. 제자는 그 일에 자신의 스승인 정순식을 추천했다. 물론 정순식은 돈이 궁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할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았다. 정순식은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고 생각하며 뒷걸음질 치려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정순식은 그동안 잊었던 현장의 감각을 되새긴다.
살인사건,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그곳에 남긴 흔적과 그 흔적을 담은 가장 큰 증거인 피해자의 모습에서 정순식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사진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아주 미세한 단서였다. 그 단서를 통해 정순식은 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사건도 맡게 된다. 눈앞에서 증발한 추락사의 진실, 오래전 사라졌던 엄마의 귀환, 42년 전 찍은 필름의 미스터리… 정순식은 차례로 사건들을 해결한 끝에 마침내는 지금껏 애써 무시하려 했던 15년 전 사건의 진상과 맞닥뜨린다.
정순식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인 현직 여형사 나영과 감식반 기혁, 전직 형사이자 현재는 실종 전문 탐정인 태종, 그리고 자신에게 경찰과 관련된 일거리를 준 제자 재혁과 함께 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삶의 우여곡절 끝에서도 보이지 않는 여섯 번째 손가락인 양 늘 들고 다녔던 카메라, 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자신이 왜 지금껏 사진을 찍어왔는지, 그에게 있어 최초의 사진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찍게 될 사진은 무엇인지, 정순식은 이 모든 수수께끼의 진상을 늘 곁에 두었던 붉은 소파에서 찾는다.
세 개의 붉은 소파, 그것은 사진작가 정순식의 삶을 깊게 관통하고 있었다.
조영주
사진작가 정순식의 인생엔 세 개의 붉은 소파가 등장한다. 첫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에게 사진이란 이름을 주었고, 두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의 삶에서 사진을 빼앗았고, 세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에게 다시 한 번 사진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그 모든 붉은 소파의 추억담이다. 정순식, 그는 디지털이라는 시류를 따르지 못한 퇴물 사진작가다. 월세도 내기 힘들겠다고 염려하던 정순식에게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제자로부터 짭짤한 보수의 일거리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 의뢰가 수상하다. 어디로 와라, 가라 하는 이야기도 정확하지 않다. 어떤 걸 찍느냐, 물었더니 알 수 없단다. 대충 인물사진이라는 어중된 대답이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지만 정순식은 일단 받아들이기로 한다. 매일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일력 한 장을 뜯고는 할 일이 없어 빈둥대는 일상보다 안 좋은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순식의 생각은 틀렸다. 이것은 자신이 생각한 안 좋은 일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제자가 소개시킨 일은 살인사건의 현장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그것도 피해자, 시체 사진을!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찰에서는 시체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를 구했다. 제자는 그 일에 자신의 스승인 정순식을 추천했다. 물론 정순식은 돈이 궁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할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았다. 정순식은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고 생각하며 뒷걸음질 치려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정순식은 그동안 잊었던 현장의 감각을 되새긴다.
살인사건,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그곳에 남긴 흔적과 그 흔적을 담은 가장 큰 증거인 피해자의 모습에서 정순식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사진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아주 미세한 단서였다. 그 단서를 통해 정순식은 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사건도 맡게 된다. 눈앞에서 증발한 추락사의 진실, 오래전 사라졌던 엄마의 귀환, 42년 전 찍은 필름의 미스터리… 정순식은 차례로 사건들을 해결한 끝에 마침내는 지금껏 애써 무시하려 했던 15년 전 사건의 진상과 맞닥뜨린다.
정순식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인 현직 여형사 나영과 감식반 기혁, 전직 형사이자 현재는 실종 전문 탐정인 태종, 그리고 자신에게 경찰과 관련된 일거리를 준 제자 재혁과 함께 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삶의 우여곡절 끝에서도 보이지 않는 여섯 번째 손가락인 양 늘 들고 다녔던 카메라, 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자신이 왜 지금껏 사진을 찍어왔는지, 그에게 있어 최초의 사진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찍게 될 사진은 무엇인지, 정순식은 이 모든 수수께끼의 진상을 늘 곁에 두었던 붉은 소파에서 찾는다.
세 개의 붉은 소파, 그것은 사진작가 정순식의 삶을 깊게 관통하고 있었다.
조영주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