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단순히 비가 많이 오고 기온이 올라가는 날씨 차원의 문제를 넘어 신종 감염병들이 창궐하고 환경 변화로 인한 사망률 증가 속도도 가속화하고 있다. 21세기들어 유행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에볼라 바이러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올해 지카 바이러스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이 시급하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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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엘니뇨 현상으로 지카 바이러스 확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을 걱정했다. 마거릿 챈(천펑푸전) 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WHO집행위원회에서 “올해 엘니뇨와 관련된 기상현상으로 많은 지역에서 모기 개체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카 바이러스가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이집트숲모기’를 매개로 확산한 것을 감안한 우려 표명이다.
미국 CNN 등 주요 외신은 엘니뇨가 발생하면 모기를 매개로 하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다고 보도했다. 남미 지역의 기온이 올라가고 강수·침전 양상이 달라지면서 모기 개체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엘니뇨는 에스파냐어로 ‘아기예수’를 뜻하는 말이다. 페루에서 해수 온도 상승으로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일이 크리스마스 전후에 일어난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해수온도 상승을 의미하는 기후변화의 상징처럼 광범위하게 쓰인다.
적도 부근에는 원래 무역풍이 불어 차가운 수온이 유지되고 이로 인해 풍부한 어장이 형성됐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로 무역풍이 줄어들고 차가운 바닷물이 섞이지 못하면서 페루 연안의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상승했다. 때에 따라 7∼10도씩 높아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어획량이 급감하고 어장이 황폐화했다. 생태계 변화만이 아니다. 해수 온도 상승은 수증기를 많이 만들어 비구름을 늘렸고, 그 비구름은 중남미 지역에 많은 비를 내려 열대우림에 너무 많은 수분을 공급했다. 모기가 급증한 배경이다.
북미 100여개 대학의 대기·지구과학 연구모임인 대기연구대학연합(UCAR)의 앤드루 매너핸은 “기상학적 요인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이집트숲모기의 서식 범위와 바이러스 전파력을 결정하는 데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앤서니 코스텔로 WHO 모자·청소년보건 부문장도 “장기적으로 기후변화가 이뤄질 경우 모기에 취약한 지역은 뎅기열과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더 취약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태평양 반대쪽인 호주에서는 가뭄이 발생하는 등 엘니뇨는 전 지구적 이상기후의 시발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엘니뇨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지 않지만 간혹 여름철 이상저온 현상이나 긴 장마, 폭우, 겨울철 이상고온과 가뭄 현상이 엘니뇨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성백린 연세대 교수(생명공학)는 17일 “기후변화나 동물 생태계 변화는 바이러스 창궐의 큰 원인 중 하나”라며 “온난화로 인한 엘니뇨 현상으로 철새들의 이동 동선이 바뀌면 새로운 바이러스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이동·확산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는 21세기 세계보건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는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2008년 11월 정부·학계·시민사회 등 300여명의 전문가가 모인 기후변화건강포럼이 출범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피해 분야를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영양실조, 말라리아, 설사병, 열사병 등으로 2030년에는 매년 25만명의 추가 사망자가 예상된다. 백신기술 개발과 위생환경 개선으로 전반적인 감염병 발생은 줄어들고 있지만 기후변화와 관련이 높은 말라리아, 세균성 이질, 쯔쯔가무시증, 곤충·설치류 매개 감염병 등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질병 증가 추세에서 환자 발생 지역뿐만 아니라 질병매개체 분포도 확산하는 경향을 보여 긴장하고 있다.
성균관대 의대 정해관 연구팀의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피해 부담 및 사회경제적 영향평가 관련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1년 기준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건강영향 비용은 8900억원이며, 앞으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건강피해는 2050년까지 최대 9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건강피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약 12조6000억(RCP 4.5)∼15조1000억원(RCP 8.5), 2030년 27조6000억(RCP4.5)∼35조7000억원(RCP8.5), 2050년 57조5000억(RCP4.5)∼96조1000억원(RCP8.5)으로 예상된다. 이 비용은 직접 의료비와 사회가 부담하는 건강보험비용, 의료기관 이용이나 조기사망에 따른 생산성 감소, 삶의 질 하락이나 고통 등 유무형 비용을 다 합친 것이다.
기후변화는 태풍, 홍수, 가뭄 등 기후재난과 더불어 이제는 사망률이나 질병 발생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보험연구원 김진억 수석담당역은 ‘파리 기후변화협약이 보험산업에 주는 영향’ 보고서에서 “생명보험은 그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작았으나 이제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위험으로 인한 사망률과 질병 발생률 증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기후변화와 연관된 사망자는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고령층 등에서 많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역사상 평균 기온이 가장 높고 갑작스런 태풍, 홍수, 가뭄 등을 초래하는 기후변화가 뚜렷해지면서 보험업계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기후변화대응TF 관계자는 “기후변화는 생태계, 농업, 산업 등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지만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며 “폭염과 기상재해로 인한 직접적 영향뿐만 아니라 생태계 변화로 인한 감염별 발생, 알레르기 질환의 증가 등 간접 영향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WHO 남태평양기술지원부 김록호 환경보건전문가는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강력한 기후변화협약으로 건강한 지구와 환경이 확보될수록 미래 세대의 건강한 삶이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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