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행복공장’ 권용석(53) 이사장은 검사로 일하던 1990년대 청소년 문제에 눈을 뜨게 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비행을 저질러 검찰청에 출석한 아이들한테 부모에 관해 물어보면 이미 이혼했거나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모의 방치 탓에 초등학생 시절부터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온 아이도 많았다. 젊은 검사의 머릿속에선 ‘엄한 처벌을 한다고 이런 아이들이 바뀔까. 오히려 더 큰 폭탄이 되어 우리 사회를 위협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행복공장 권용석 이사장(왼쪽)과 극단 ‘연극공간 - 해’ 노지향 대표 부부는 소년원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이유에 대해 “자존감을 회복함으로써 소년원을 나선 뒤 가정과 사회에서 빨리 정상궤도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
“저희 활동을 ‘치료연극’ 즉 연극을 통한 치료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표현은 솔직히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워요. 치료는 의사가 환자한테 하는 거잖아요. 아이들한테 뭔가 문제가 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치료도, 바로잡는 일도 아닙니다. 그냥 아이들 내면의 억눌린 감정들을 밖으로 쏟아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전부입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소년원 대강당에선 연극 ‘아름다운 아이들: 2015 겨울’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공간 - 해’ 단원들의 지도를 받은 소년원 학생 8명이 배우로 나서 친구와 가족, 후원자들 앞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과 타고난 ‘끼’를 신명나게 펼쳐 보였다.
저마다 ‘태어나자마자 보육기관에 맡겨진 아이’, ‘새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 등으로 역할을 맡은 아이들의 대사는 태반이 욕설과 비속어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아이들의 답답한 처지를 생생히 드러내 보여줬다.
“연극 내용은 대부분 아이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들입니다. 극단 소속의 전문 배우들이 곁에서 돕긴 하지만 구성이나 배역, 대사 모두 아이들이 직접 정하죠. 연습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아이들 간의 대화가 그대로 대본으로 채택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어떻게 저런 주옥같은 표현을 떠올렸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애드립이 많죠.”
부부가 연극을 통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자존감’이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자포자기 상태로 내몰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나도 소중한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성공적인 무대를 위한 땀 나는 연습, 공연 후 관객과 함께하는 커튼콜의 희열 등은 자존감을 기르는 데 더없이 좋다.
올해 행복공장의 목표는 소년원 과정을 마치고 가정과 사회로 돌아온 아이들과의 교감을 지속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연극은 소년원을 드나들며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원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과정의 일부다. 소년원 문을 나선 아이들이 종전의 관계를 회복해 가정과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게끔 돕는 것 또한 어른들 몫이다.
“소년원 바깥은 온통 아이들을 유혹하는 요소가 가득하죠. 문제가 있는 부모가 그대로 있는 경우도 대부분이고요. 소년원 밖 환경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다시 소년원으로 돌아갈지도 몰라요. 소년원을 나간 아이들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함께 놀이나 여행도 하면서 멘토링을 제공하는 일종의 ‘사후관리’ 역할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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