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유니폼 넘버, 15번의 주인공…①박찬숙, 16세에 국가대표 된 사상 첫 완벽한 여자농구 센터
박찬숙(1959년 6월 3일생)은 한국여자농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주인공이다.
사상 처음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완벽한 신체조건을 갖춘 대형센터였다.
△3박자를 모두 갖춘 첫번째 여자농구 센터
1970년대까지 한국여자농구는 좀처럼 아시아 무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1967년 박신자(1941년생, 175cm)를 주축으로 한 한국여자대표팀이 세계선수권 2위을 차지,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후 세계대회에서 큰 성적을 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농구의 첫번째 요소라는 키에서 동구와 서구선수들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 등장한 박찬숙은 어머어마한 관심을 모았다.
서구 센터들과 골밑싸움서 크게 뒤지지 않을 190cm에 이르는 큰키는 물론이고 기술과 유연성 등 이른바 3박자를 갖췄다.
1990년 중반까지만 해도 180cm를 넘는 여자농구선수가 레이업(점프해 볼을 골대로 슬쩍 토스하듯 집어 넣는 기술)만 할 줄 알면 억대의 스카우트 비를 받았다라는 말이 나돌만큼 키가 큰 여자농구 선수는 상당히 어설펐다.
이런 마당에 3박자를 갖춘 박찬숙 등장에 농구계늘 일제히 환호했다.
△ 만 15세 9개월나이로 국가대표에 뽑혀
박찬숙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70년 키가 당시 어른 남성 평균키보다 큰 170cm에 이르렀다.
숱한 주목과 기대속에 자란 박찬숙은 숭의여고 1학년이었던 1975년, 당시 최연소(15세 9개월)로 국가대표로 뽑혀 (박찬숙의 기록은 39년이 흐른 2014년 분당경영고 1년생 박지수가 15세 7개월로 깨뜨림) 주목을 받았다.
MBC TV 시간여행, 그때 그랬지 방송화면 |
박찬숙은 태평양 화학에 입단한 이듬해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1984년 LA올림픽에서 중국 센터 정하이샤(204cm)를 완벽히 제압, 한국대표팀을 결승에 올려 놓았다.
결승전에서 미국에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한국스포츠 사상 단체전 첫 은메달의 주역을 온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올림픽 직후 중국 상하이서 열린 1984년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 당시 중국 농구관계자들은 "한국대표팀 15번이 왔는가"라며 박찬숙에 신경을 집중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 현역은퇴 뒤 대만진출, 1992년 국내복귀
박찬숙은 1985년 '결혼하겠다'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3년뒤인 1988년 대만 난야플라스틱 선수로 복귀한 뒤 1992년 국내로 복귀, 태평양화학 플레잉코치로 후배들과 나란히 코트에 섰다.
박찬숙 가치는 1977년 12월 13일자 경향신문기사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박찬숙은 100m를 15초대에 뛰며 서전트점프(제자리 점프) 52cm로 뛰어서 농구림(305cm)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여자선수로 박찬숙 같은 선수 2~3명만 있으면 세계제패도 가능하다"고 극찬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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