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0일 기준금리를 연 1.5% 수준에서 9개월 연속 동결하면서 신중한 행보를 이어갔다.
고민 끝에 국내외 경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금통위가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금융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로 경기 부양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됐다.
하성근 금통위원이 0.25% 포인트 인하의 소수의견을 8개월 만에 제시한데다 경제 지표도 잇따라 부진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월 수출 실적은 전년 동기보다 12.2% 줄어 역대 최장기간인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또 통계청이 이달 초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1월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1.2% 감소했고 소매판매는 1.4%, 설비투자는 6.0% 줄었다.
수출뿐 아니라 내수, 투자 등의 지표가 뚝뚝 떨어지면서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졌다.
그럼에도, 금통위원들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무엇보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감안한 결과로 풀이된다.
연초부터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과 국제유가 하락 등의 악재로 국제금융시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여기에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금융시장까지 높은 변동성을 보였고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반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은 흐름이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수출 등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서울 외환시장의 높은 환율 변동폭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의 유출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은 유의할 대목이다.
작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8개월 동안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의 채권, 주식 등 증권투자 규모는 233억8천700만 달러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8조원이나 된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행보도 큰 변수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양호한 고용 지표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인상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 미국과 금리 차이가 좁혀지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또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는 효과가 약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가계 소비나 기업 투자가 위축된 이유는 시중에 유동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시장금리는 오히려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김현욱 SK경제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경기 둔화는 세계 경제의 상황 등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단기적인 금리 조정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그 효과는 상당히 한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1천200조원을 넘긴 가계 부채의 증가를 부추기고 부채가 소비를 제약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또 자칫 저금리가 빚으로 연명하는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지장을 줄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한국은행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최대한 아껴둬야 한다는 기류가 적지 않다.
경제가 지금보다 심각해질 상황을 염두에 두고 통화정책의 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정부는 경제 상황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경제 상황보다 지금은 경제 심리가 더 큰 문제"라며 경제를 과도하게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7일 수출 감소폭이 1월보다 줄어들고 있다며 "최근 경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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