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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더께 아래 숨겨진 유물의 비밀을 파헤치다

입력 : 2016-03-10 20:36:30 수정 : 2016-03-10 20: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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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를 지키다’전 수천년 혹은 수백년, 시간은 유물에 막대한 가치를 더한다. 희소성, 사료적 가치, 예술성 어느 하나 시간에 빚지지 않은 것이 없다. 동시에 시간은 유물이 견뎌내야 할 최강의 적이다. 부서지고 바래며, 또 녹슬어 끝내 형체마저 허물어버리는 시간의 힘을 극복하기란 힘겹다.

보존과학은 따라서 시간을 상대로 한 싸움이다. 유물의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을 연장해 또다시 수천년, 수백년을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다. 시간의 더께 아래 숨겨져 있던 비밀을 파헤치는 탐색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 ‘보존과학, 우리 문화재를 지키다’를 마련했다. 1976년 박물관이 보존과학에 첫발을 내딛은 후 4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다. 여느 전시회처럼 전시품의 외양에 눈길을 주기보다는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유물을 두고 사람들이 벌인, 앞으로 벌일 지난한 싸움의 면모가 드러난다.

말 탄 사람 토기가 1924년 경주에서 여러 조각으로 깨진 채 출토될 당시의 모습.
◆‘말 탄 사람 토기’, 원래의 모습을 되찾다

1924년 경주시 노동동의 금령총에서 말을 탄 사람 모양의 토기가 발굴됐다. 신라인의 영혼관과 당시의 복식, 무기, 말갖춤 등 연구에 큰 가치가 있는 유물이었다. 지금은 번듯한 모습을 하고 국보 91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출토 당시에는 엉망으로 깨져 있었다. 파편을 붙여 응급으로 복원하고 수십년을 견뎠다. 하지만 1977년 더 이상 그대로 보관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고 보존처리를 결정했다. 출토 당시의 모습대로 해체하는 게 첫 단계였다. 토기는 38개의 파편으로 분해됐다. 첫 번째 복원의 조악한 실상도 드러났다. 말 가슴 앞의 대롱과 엉덩이 부분의 등잔을 분리하자 성냥개비, 나무젓가락이 나왔다. 접착면을 지지한답시고 끼워둔 것이었다. 

당시 응급으로 복원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성냥개비, 젓가락을 사용하는 등 수준은 조악했다.
박물관 보존과학팀은 이물질을 씻어내고, 파편을 접합해 복원했다.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접합 흔적을 알아볼 수 없도록 신경을 썼다. 또 결손된 채 남아 있던 말머리 왼쪽면 장식, 관모의 장식 3개 등은 기존 사진자료, 남아 있는 다른 한쪽의 장식을 참고해 되살렸다.

박물관은 “과거에는 문화재 본래의 모습을 되돌리는 수복(修復)기능이 (보존과학의) 주요 역할이었다”며 “최근에는 손상을 피하기 위한 처리, 적합한 재료의 연구, 제작 기술 분석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1차 복원 상태로 수십년을 견뎠으나 1977년 보존처리가 결정돼 토기를 분해하자 38개의 파편으로 나뉘었다.
◆‘최치원 진영(眞影)’의 비밀을 캐다


2009년 국립진주박물관이 ‘지리산’ 특별전을 준비하며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진영을 전시품으로 선택했다. 유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됐는데, 적외선 촬영을 통해 이 그림이 ‘건륭 58년’(1793년) 5월 하동 쌍계사에서 ‘평일’, ‘찰호’란 승려가 참여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진영에는 원래 반신상, 전신상의 동자승 2명이 그려져 있었으나 어느 시점에 문방구류 형상이 덧칠돼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굳이 동자승들을 숨긴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이 개국 후 줄곧 고수했던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진영은 제작된 쌍계사에 봉안되었다가 1825년 화개 금천사, 1868년 하동향교로 옮겨져 보관됐다. 1924년에는 다시 최치원을 기리는 사원인 운암영당으로 이동했다. 사찰에서 유학자들의 사원으로 소장처가 바뀌면서 당시 득세했던 유학자들이 동자승을 지운 자리에 문방구류를 그려 넣어 ‘유학자 최치원’의 이미지를 극대화해 재구성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전(傳) 정곤수 초상’은 애초 1590년 그린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X선 투과조사 결과 원래 청나라 관복을 입은 것이 확인돼 청나라가 건립된 1616년 이후로 제작연대가 바뀌었다. 

현재 토기의 모습.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깨진 흔적을 확인하기 힘들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실, 생명연장을 도모하다


박물관 전시실의 조명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관람객들이 유물을 최적의 상태에서 볼 수 있는 밝기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빛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손상의 방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물관은 두 가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외선을 대부분 차단하는 퇴색방지 형광등과 발광다이오드를 사용하지만 전시실은 대체로 어둡다. 빛에 민감한 회화의 경우엔 관람의 편의를 어느 정도 해치더라도 보호를 위해 조명을 더 낮추는 경향이 있다. 고려불화처럼 희귀한 유물은 진열장 유리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지 않으면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다.

진열장을 구성하는 나무, 접착제, 페인트 등도 유물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해야 한다. ‘오디테스트’는 진열장 재료를 고를 때 사용한다. 전시에 사용되는 재료와 증류수를 은, 구리 등의 금속과 함께 유리용기에 넣어 4주 동안 금속의 부식 정도를 측정한다. 박물관은 “테스트 전후의 변색과 부식 발생 정도, 무게 변화 등에 따라 진열장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재료, 일시적으로 한정된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구분한다”며 “보존과학부의 오디테스트를 통과한 재료를 전시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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