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과 인간·소녀와 소년·백인과 흑인…
다름의 간극 열린마음으로 풀어내
맥 바넷 글/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서애경 옮김/사계절/1만1000원 |
레오는 유령이다. 도시 변두리에 있는 집에서 아주 오랫동안 혼자 살았다. 동화책을 읽거나 먼지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긴긴 시간을 보냈다. 어느 봄날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레오는 반가운 마음에 홍차를 끓이고 토스트를 구워 내오지만, 사람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집에 유령이 있다며 무서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 눈에는 둥둥 떠다니는 주전자만 보일 뿐, 레오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깐.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오는 집을 떠나 떠돌이 유령이 된다. 북적이는 도시로 가보지만 레오가 기억하는 풍경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아무도 레오를 보지 못하고, 심지어 쓰윽 지나쳐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는 자신을 알아보는 소녀와 마주친다. 소녀의 이름은 제인. 레오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랑 기사 놀이 할래?”라고 물어온다. 유령 소년과 상상력 넘치는 소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책은 서로 다른 존재의 우정을 다룬다. 좀 더 들여다보면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존재 앞에서 때때로 불편함을 느낀다. 선입견 때문에 거리를 두거나 다른 점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레오와 제인은 어떨까. 둘은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다. 유령과 인간, 소년과 소녀, 변두리와 도시, 백인과 흑인, 옛날 어린이와 요즘 어린이처럼 말이다. 작가는 이 간극을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혼자 상상놀이를 즐겨 하던 제인은 레오가 자신만의 상상 친구라고 생각한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이고 제인에게만 보이는 건 다른 상상 친구들과 마찬가지니까. 반면 레오는 자신이 유령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사실대로 말하면 제인이 무서워서 달아날까봐 걱정하다가 결국 용기내어 고백한다. “난 유령이야. 네 상상 친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안 할 거야. 나는 네 진짜 친구야.”
레오의 고백을 들은 제인이 환하게 답한다. “아, 그래? 그럼 더 좋지!” 짧은 답변 속에는 레오를 있는 그대로, 유령이라는 사실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담겨 있다. 사실 둘에게는 진짜 친구, 상상 친구를 나누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제인은 레오의 존재를 믿고 있었으므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두 작가는 1940∼1970년대 그림책들에서 영감을 받았고, 실제로 이 작품이 오래된 그림책 같은 분위기를 내기 바랐다. 캐릭터의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로빈슨의 그림은 주인공 레오의 감정선을 따라 섬세하게 흘러간다. 외로움, 기대감, 서운함, 즐거움, 걱정, 흥분, 안도감 ···. 여러 가지 감정들이 레오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지며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푸른색과 검정색 두 가지만 사용했음에도 책을 감도는 부드러운 기운은 사랑스러운 유령 이야기와 제법 잘 어울린다. 2015 ‘뉴욕타임스’ TOP10 그림책, ‘보스턴글로브’ 최고의 책, ‘퍼블리셔스위클리’ 최고의 그림책 등으로 선정됐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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