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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마이너스 금리 시대의 총선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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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31 20:19:43 수정 : 2016-03-31 20: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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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원론 다시 써야 할 만큼
지구촌 폭주하는 현실 놓고도
포퓰리즘 공방이나 일삼는
철없는 정당과 정치인들
유권자를 바보로 아는 건가
이렇게 철없을 수도 있나. 4·13총선에 본격 진입한 여야가 내민 공약을 보니 속이 다 뒤집힌다. 왜냐고? 먼저 대내외 경제 상황을 돌아보자.

주류 경제학의 경기변동 대처 논리를 흠잡을 때 비수처럼 쓰이는 개념이 있다. ‘제로 금리 하한(Zero Lower Bound)’이다. 전통 요법에 따르면 불황 기류는 무리 없이 퇴치되게 마련이다. 이자율 하락이란 고전적 처방 덕분이다. 경기 회복의 견인차는 저금리 효과다. 이에 힘입어 소비·투자가 되살아나 선순환이 재개된다. 불안 끝, 안심 시작이다. 적어도 경제원론은 그리 가르친다. 그런데 명목 이자율은 저금리 효과가 발생할 때까지 계속 하락하나. 천만에. 하한이 있다. 아무리 내려도 0%까지다. 바로 제로 금리 하한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명목 이자율이 하한을 밑도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현금이 은행 밖으로 도망치기 때문이다. 현금은 금리가 제로인 금융자산이다. 하한이 깨지면 돈은 꽁꽁 숨고 금고 파는 상인만 콧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자율을 내세우는 통화정책이 낡은 수도관처럼 꽉 막히는 대목이다. 경기 상황에 관계없이 하한을 깰 수는 없는 것이다. 1월에 나온 한국은행 보고서에 “이론상 정책금리를 마이너스로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나…”라고 돼 있는 것도 그래서다.

원론 강독은 여기까지다. 현실의 수레바퀴가 황당하게 구르고 있어서다. 세계 경제 동향은 자못 엽기적이다. 가까운 일본부터 그렇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3월15일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앞서 2월 시중은행 당좌예금에 0.1% 수수료를 부과하는 정책 시행에 들어갔으니, 말만 동결이지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강화한다는 선언이나 진배없다. 은행 간 거래만도 아니다. 최근 ‘듣보잡’ 기업어음(CP)을 발행한 사기업도 있다. 50억엔을 빌리고 되레 2만5000엔의 이자를 받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요지경이다.

유럽도 가관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마이너스 금리를 2년 전 도입한 것도 모자라 얼마 전 시중은행이 맡기는 초과지불준비금 금리를 추가 인하했다.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중앙은행도 유사하다. 보관료를 내고 돈을 맡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전통 요법은 물론이고 제로 금리 하한 개념마저 무색해질 만큼 세계 경제가 망가졌다는 뜻이다. 지구촌은 ‘지도에 없는 길’로 폭주하는 엽기 자동차 물결이다. 게다가 온통 울퉁불퉁 자갈길, 아슬아슬 벼랑길이다. 근린궁핍화정책의 포연도 곳곳에서 피어 오르고….

대한민국은 소규모 개방 경제 체제의 국가다. 엽기 자동차 물결에 아찔할밖에. 금융·산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도 조마조마하다. 이 비상한 시국에 4·13총선이 치러진다. 정치권은 어찌해야 하나. 답은 뻔하다. 정성과 고민이 담긴 고품질 공약으로 민생 불안을 달래야 한다. 총선 쟁점 또한 대내외 위기 극복에 맞춰야 한다.

정치판은 딴판이다. 그래서 속이 뒤집힌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 기류에 부응하는 공약으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새누리당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이 운을 뗀 ‘한국판 양적 완화’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외에는 대개 포퓰리즘 악취나 뿜어내기 일쑤다. 싹이 노랗다. 이런 공약 실력으로 입법권력을 노리는 배짱에 기겁하게 된다.

일찍이 공천을 놓고 벌어진 이전투구나 이합집산은 민주적 정당정치 경험이 일천한 탓이려니 치자. 그렇다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저질공약 경쟁까지 참아줄 수는 없다.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못 미치고, 민생과 경제조차 백안시하는 이들이 악수 공세나 펼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포퓰리즘 공방도 간과할 계제가 아니다. 4대 정당이 향후 5년간 만들겠다는 일자리만 1100만개를 웃돈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다. 정부와 민간이 안간힘을 써서 지난해 새로 만든 일자리가 33만여개에 불과하다. 뜬구름을 잡아도 적당히 잡아야 혀를 덜 찰 것 아닌가.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 특히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휴지다. 공약도 마찬가지다. 표가 절박해도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국고 상태와 국민 부담 능력이다. 여야에 묻게 된다. 확인해 봤는지를. 할 것은 하지 않고 안 할 것만 골라 하는 이들이 어찌 감히 손을 벌리는지도 묻고 싶다. 유권자를 바보로 아는 것인가.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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