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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한국인답게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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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07 21:14:05 수정 : 2016-04-07 21: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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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 사고 딛고 일류 해양국가 거듭난 영국
세월호 공방에 대책 뒷전 한국… 공동체 윤리의식 높여야
4월의 두 비극을 마주한다. 하나는 세계 최악의 해난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최악의 해난 참사다. 1912년에 일어난 타이타닉호 침몰과 2년 전 세월호 사고이다. 두 사건은 날짜상으론 단 하루 차이다. 시기만큼이나 사건의 원인도 쏙 빼닮았다. 두 비극의 근본 불씨는 바로 인간의 탐욕과 무사안일이었다.

304명의 인명을 앗아간 세월호에선 탐욕으로 오염된 탈법과 부조리가 춤을 췄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돈을 아끼려고 선장과 승무원들을 박봉의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일본에서 18년 사용한 낡은 선박을 사들여 객실과 화물칸을 풍선처럼 늘렸다. 선박의 생명인 평형수를 빼내고 그 자리에 화물과 차량을 실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영국의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에도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있었다. 안전의식이 실종됐고 구명보트는 승객을 태우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그것으로 배가 가라앉을 리는 없다. 결정적인 요인은 인간의 욕심이었다. 타이타닉호는 유빙이 많은 짧은 항로로 첫 운항을 시작했다. 대서양을 최단 시간 횡단한 배에게 주는 블루리본 상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승객의 안전보다 앞선 까닭이다. 결국 배는 항구를 떠난 지 나흘 만인 4월14일 밤 거대한 빙산과 충돌해 이튿날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승객과 선원 1513명도 함께 수장됐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할 당시 배의 충격은 별로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충격에 어떻게 90m 크기의 거대한 구멍이 뚫렸을까. 훗날 전문가들은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배의 잔해를 분석했다. 그 결과 호화유람선을 가라앉힌 진짜 주범이 정체를 드러냈다. 선체를 조립할 때 사용하는 ‘리벳 조인트’였다. 리벳은 시중에 통용되던 것보다 불순물이 세 배 이상 섞여 있었고, 제조 작업도 초보 기술자들이 맡았다. 강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불량 리벳들로 배가 조립됐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빙산과 충돌하자 리벳이 부서져 선체의 접합부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리벳 하나의 가격은 단돈 1달러였다. 이런 작은 욕심과 무사안일이 대재앙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는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다.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는 어린이와 여성을 먼저 구출할 것을 승무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키를 놓지 않고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스미스 선장은 사람들을 향해 “Be British!”라고 외쳤다. 영국인답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들은 영국인답게 힘이 약한 어린이와 여성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웠다. 어린이와 여성 구조율은 78%로, 남성의 20%보다 훨씬 높았다. 백만장자였던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 역시 애인과 하인을 구명정에 태운 뒤 담담히 죽음을 맞았다.

한국의 세월호에선 한국인답게 행동하라는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몇몇 의인만 영웅적 투혼을 발휘했을 뿐이다. 아이들은 “제자리를 지켜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객실에서 순한 양처럼 대기했다. 그 사이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 해경에 구조된 선장은 병원에서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한 방울의 윤리의식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안전 불감증보다 더 무서운 ‘윤리 불감증’이다.

공동체에 대한 윤리 불감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영국은 대참사 이후 해양안전 수칙을 만들어 일류 해양국가로 거듭 났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항한 진상조사기구는 정치 이념의 암초에 걸려 좌초 중이다. 유족들도 자신의 아픔을 공동체의 선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부조리의 온상이었던 관피아 역시 정피아로 이름만 바뀐 채 여전히 횡행한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내부에 잠재된 적폐들을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그런 찌꺼기를 말끔히 청소한다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고 후 서로 네 탓만 하면서 2년의 세월을 허송했다. ‘공동체의 선’은 침몰되고, 영혼 없는 대책과 목소리만 물 위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세월호의 아픔을 추스르고 대한민국호가 순항하자면 공동체의 선을 조속히 인양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당당히 외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답게 행동하라!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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