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5월에 자행한 연쇄 테러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총 7건이다. 최소 228명이 IS의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바그다드의 한 시장에서 폭탄이 터져 최소 62명이 사망했고, 17일 바그다드의 시아파 거주지 시장과 식당 등 4곳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이어져 69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는 모두 민간인이었다.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 테러의 공포를 잊지 못한 유럽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를 경계하고 있다. 지난 15일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본머스의 축구 경기를 앞두고 ‘폭발물로 보이는 장치’가 발견돼 경찰이 7만5000여 관객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고 경기는 결국 취소됐다. 폭발물이 훈련용 가짜로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축구경기가 취소된 것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사상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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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테러로 시선을 집중시킨 테러범들은 이젠 정부나 공공기관보다 민간인을 공격하고 있다. 파리 테러, 바그다드 자살폭탄 테러, 터키 이스탄불 관광 테러, 브뤼셀 테러에서 희생자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민간인처럼 ‘쉬운 대상’을 공격하는 ‘소프트 타깃’(soft target) 테러가 확산하는 건 대중들의 공포심리를 자극해 테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비가 삼엄한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을 목표로 삼는 ‘하드 타깃’(hard target) 테러보다 성공 가능성도 높다.
인권단체 ‘무장폭력에 대한 행동’(AOAV)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폭발물 등을 이용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은 절반가량 늘었다. 지난해에만 3만3000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AOAV는 공중 투하된 폭탄, 박격포, 급조폭발장치(IEDs), 포탄 등에 따른 희생을 ‘폭발물 공격에 의한 사상’으로 집계했다. 이런 공격으로 희생당한 4만4000명 가운데 약 76%가 민간인인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내전 등 교전 과정에서 적군을 상대로 한 폭발물 공격에서 적군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17일(현지시간)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한 이라크 바그다드의 시아파 거주지 사드르시티 시장에서 경찰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차량에 실린 폭발물이 터지면서 18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하는 등 연쇄 폭탄테러로 최소 69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그다드=AP연합뉴스 |
AOAV는 지난해 하루 평균 폭발물 공격으로 숨진 민간인이 30명 정도로, 특히 주거지에서 발생한 폭발물 공격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의 90% 이상이 민간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방어능력이 없는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노린 소프트 타깃 테러는 계획부터 실행까지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다. 테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저항이나 공격을 받을 위험이 적고 소수 인원으로 다수의 사상자를 낼 수 있다. 상대가 테러 계획을 예측하거나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점, 테러 이후 대중들의 공포심이 극대화돼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도 테러범들이 소프트 타깃을 노리는 이유다.
음식점, 공연장, 관광지, 학교, 공항 등 일상 공간이 테러 위험에 노출되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국제 민간 연구시설인 경제평화연구소(IEP)는 테러리즘으로 인한 2014년 세계 경제의 직간접 손실이 529억달러(약 62조1839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하드 타깃 위주였던 2000년(49억3000만달러)에 비하면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세계 테러 공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IS가 궁지에 몰리면서 소프트 타깃 테러가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S는 조직원들에게 ‘외로운 늑대’형 테러를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9·11사태를 계기로 미국 주도로 ‘테러와의 전쟁’이 전개됐지만 테러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시리아, 예멘, 이라크 등 수년째 내전이 계속된 테러 위험 지역뿐만 아니라 파리, 벨기에 등 유럽까지 테러에 노출됐다.
IEP는 매년 세계 162개국을 대상으로 세계 테러리즘 지수(GTI)를 산정한다. 테러사건 발생빈도와 희생자 수를 인구 대비로 환산한 10점 척도의 지표다. 이에 따르면 2015년 현재 테러 무풍 국가군(GTI 0.0)은 한국, 북한, 일본, 쿠바, 베트남 등 39개국뿐이다. 이라크가 10점으로 테러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시리아 등이 최고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통상적으로 테러 위험 국가로 분류되는 GTI 4.0 이상 국가는 43개국에 달했다. 중국(6.29), 러시아(6.20), 영국(5.61), 미국(4.61), 프랑스(4.55)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GTI 2.0 이상인 잠재적 테러 위험국은 81개국에 이르렀다.
지난 3월22일 벨기에 브뤼셀 자벤텀 국제공항과 시내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건을 두고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암흑의 시대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무방비, 무차별 테러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우고 있는 유럽의 상황을 빗댄 말이다. 더 이상 테러 안전지대는 없다는 불안감이 전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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