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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우리’라는 말 잔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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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04 21:25:12 수정 : 2016-07-04 21: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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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갈등으론 지구촌 위기 못 풀어
공감의 진화 위해 구각 깨고 벗어나야
‘우리’처럼 보기 좋고 예쁘고 흐뭇한 말이 또 어디 있으랴. 인류의 근본어인 ‘나’와 ‘너’, 그리고 ‘그’가 모여 ‘우리’가 된다. 형식 논리로 보면 자연스럽게 형성될 말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그에 합당한 말값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진정한 ‘우리’의 지평에 도달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단지 지극히 순간적인 일치에 의해 우리를 경험할 뿐, 근원적으로 우리의 지평은 늘 결여인 채로 미끄러지는 형상이 아니었을까. 잘 되는 일이라면 나를 중심으로 잘 돼야 하고, 잘못되는 일이라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사고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너다’, ‘너는 나다’는 수사학적 허위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현실이었던 것 아닐까.

최근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만 봐도 그렇다. 프랑스, 터키에 이은 방글라데시 테러를 보면서 우리는 종교 근본주의자의 배타적 전선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와 남, 우리와 당신들 사이에 엄격한 장벽을 설치해 놓고, 이렇다 할 반성의 의식 없이 배타적 행동을 감행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발생한 아파트 층간 소음문제로 야기된 살인사건도 그렇다. 층간 소음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오래됐지만, 그렇다고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위층의 노인이 ‘우리’ 가족이었더라도, 방글라데시 식당에서 인질로 붙잡은 이들이 ‘우리’ 가족이었더라도 사건이 그토록 어처구니없이 진행됐을까.

이런 테러나 개인 간 증오를 포함해 인종 차별, 종교 갈등, 환경 파괴, 기후변화, 기아, 전쟁 등 지구촌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진화생물학자 폴 에얼릭과 심리학자 로버트 온스타인이 공저한 ‘공감의 진화’가 주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나약한 생물 종에 불과한 인간이 지구의 우세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공감과 협력 능력 덕분이다. 그런데 인류 문명의 발전 정도에 비해 공감의 진화 정도나 속도는 현저히 못 미치거나 느리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많은 지구촌의 위기는 공감 능력 부진이 그 핵심 원인이다. 그러니 인간은 공감 능력의 진화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하며, 훨씬 폭넓은 영역에서 그들의 빈곤이나 즐거움, 곤경 등을 함께 나눠야 한다. 모든 인류가 하나의 가족이며 또한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의식적인 이해가 선행될 때 우리는 오늘날 직면한 많은 문제에 비로소 대처할 수 있고, 인류라는 거대한 가족이 기능 장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어쩌면 미래의 우리 후손들과도 한 가족으로서 충분히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공감의 진화’)

70억 인류가 모두 한 가족처럼 ‘우리’가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또 있으랴. 가망 없는 희망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우리’의 말 잔치를 위한 진화의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 공감의 진화를 위해 우리는 부단히 구각을 깨고 벗어나야 하리라. 일찍이 헤르만 헤세도 갈파하지 않았던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데미안’)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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