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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배밭에서 갓끈 매는 아베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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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2 23:19:18 수정 : 2016-10-02 23: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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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공동대처하려면
군사정보협정 체결 필요한데도
독도 영유권 자료 게시 이중 태도
양국관계 회복분위기 깨트리나
매년 가을이면 도쿄에서 ‘한·일 축제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한·일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던 2009년 처음 열려 양국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도 거르지 않고 매년 개최되면서 교류의 통로를 닫지 않고 이어온 행사다. 양국 관계가 최악이라던 지난해에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와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등이 개회식에 참석해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올해는 이 행사가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지난달 24일 열렸다. 그런데 행사 시작 전부터 뒤숭숭했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폭발음이 났다. 극우 세력의 테러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다행히도 한식 판매 코너의 한 텐트에서 테이블이 넘어져 가스 파이프가 빠지면서 발생한 단순 가스 폭발이었다. 참석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행사는 예정대로 시작됐고, 흐린 날씨였지만 공원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거의 모든 한식 판매 코너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개회식이 끝나고 문화 공연이 시작되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야외 공원이라 비를 피하기 어려운 탓인지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무대 앞쪽에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공연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많았다. 아마 1세대 한류 팬이 아닐까 싶었다. ‘사춤’이라는 댄스뮤지컬 팀이 출연했을 때는 이들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여중생과 여고생도 제법 많았다. 사실 나에게는 생소한 팀이었는데, 뜨거운 반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어른이 돼 문화 소비의 주체가 되면 지금은 주춤한 한류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 부문과 마찬가지로 양국 정부의 관계도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6일 국회 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표현했다. 이 부분은 지난 1월 국회 시정 연설 때와 같다. 또 “새로운 시대의 협력 관계를 심화시켜 가겠다”는 언급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앞에 “미래지향, 상호신뢰 아래서”라는 수식어를 추가했다. 지난해 정상회담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로 관계 개선의 불씨를 지피면서 차츰 양국 정부의 협력 분야가 확대되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흐름을 탄 듯 일본 정부는 최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올해 말 도쿄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중·일 정상회의 때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양국의 공동 대응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서로 손을 잡자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3일 일본 내각관방 홈페이지에 독도에 대한 일본의 일방적 영유권 주장과 관련된 자료 200여점을 게시했다. 그동안 제시했던 자료와 별 차이도 없는 것들이다. 마쓰모토 준 영토문제담당상은 “일본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국민에게 한층 더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가 독도 등에 대한 영유권 주장 자료를 내년에 도쿄 도심에서 상설 전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일본 언론에 흘러나왔다.

민간의 관계 회복 분위기를 정부가 깨뜨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양국은 경제, 안보, 민간 교류 등 많은 분야에서 서로 협력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말처럼 ‘상호신뢰 아래서’만 이뤄질 수 있다. 군사 분야는 특히 그렇다.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북핵 위기 앞에서 공동대처하려면 필요하다. 그러나 2012년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한반도 침략의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밀실에서 군사협력을 추진한다는데 대해 반대여론이 한국에서 불거져 무산됐던 사실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

‘배밭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오해 살 짓은 아예 하지 말라는 의미다. 일본 정부에 해주고 싶은 얘기다. 하긴 배가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마당이니 공허한 메아리만 될 것 같기도 하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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