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정치멜로 글루미 선데이

관련이슈 양경미의 영화인사이드

입력 : 2016-11-18 01:03:43 수정 : 2016-11-18 01:03:4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영화는 예술장르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정치나 사회분야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효과적으로 국민들의 여론과 사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영화를 여론이나 국민의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하며 영화인을 중요시한다. 반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영화를 단지 수익을 창출하는 상업적 도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16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스토리 구조나 감독의 예술적 감각도 뛰어나지만 영화가 국민들의 생각이나 사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헝가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글루미 선데이를 청해 듣던 노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이야기는 60년 전 과거로 되돌아간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자보(크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디오니시) 그리고 독일인 한스(베커)는 아름다운 여인 일로나(마로잔)를 동시에 사랑한다. 다만 일로나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한스는 자살을 시도하고 그때 자보가 그를 구한다.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장교가 돼 돌아온 한스는 유대인이었던 자보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반전을 거듭하는 탄탄한 스토리, 도나우강의 세체니 다리,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글루미 선데이의 슬픈 영화음악에 관객들은 매료된다. 세계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위험 속에서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1930년대에는 자살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글루미 선데이는 1935년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연인과 헤어진 슬픔을 담은 노래다. 음반이 발표된 이후 노래를 즐겨 듣던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이유로 ‘죽음의 교향곡’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작곡가 또한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

영화는 명시적으로는 멜로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독일인은 참 나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들의 악행에 분노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고 생명의 은인까지 죽이는 한스의 모습을 보면서 독일인과 나치즘에 대한 반감을 갖는다.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세 남자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 멜로영화 같지만 실제로는 나치 정권과 유대인 학살까지 다양한 정치적 이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독일인 롤프 슈벨 감독은 사랑과 죽음, 우정과 배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로나가 한스를 죽임으로써 복수에 성공하는 것을 본 관객들은 영화에서 과거 어두운 역사에 대한 독일인의 죄책감과 반성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 영화 ‘글루미 선데이’가 배경 삼은 1930년대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국내에서도 정치색이 짙은 영화제작이 늘어나고 있으며 영화의 정치성 또한 논란을 낳곤 한다. 우울한 현실 때문인가, 혹은 슬픈 노래 때문인가, 재개봉된 영화는 기존 영화 팬은 물론 새로운 관객까지 끌어들이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