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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민주주의·개혁 꿈 담겨
국회 막중한 임무 떠맡았지만
야당이 제 역할 못하고 헛발질
기회이자 위기임을 명심해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됐다. 대통령은 국정을 이끌어갈 정치적·도덕적 권위를 잃었고 국격도 실추됐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국정 혼란이 장기간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돌아보게 된다. 태어나서 청년기까지 군사정권을 겪은 세대여서 민주주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다. 그 시절 민주주의는 온갖 희생을 감수할 만한 숭고한 목적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됐고, 이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고 여겼는데 착각이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허술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미국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는 저서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민주주의를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체제”, “경쟁하는 정치조직들과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대안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보통의 시민이 선택하는 정치체제”라고 정의했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말이지만, 정치 현실에서는 민주주의를 확인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박완규 논설위원
그래서인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기대한다. 촛불집회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꿈을 드러내는 행위다.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에 이런 말이 있다. “어둠을 탓할 게 아니라 누군가가 먼저 촛불을 하나 밝히게 되면 ‘나도 촛불을 밝혀야겠다’고 하여 너도나도 촛불을 밝힐 것이고, 그렇게 전파됨으로써 수백만이 모두 촛불을 밝힐 때 그 촛불의 꿈은 분명히 현실화된다고 봅니다.”

지금 촛불에 담긴 꿈은 민주주의와 개혁이다. ‘대통령 하야’ 구호 속에는 주변의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자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 꿈을 읽어내지 못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민주주의의 재발견’에서 “촛불집회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갖게 된 특정의 패턴 내지 악순환의 구조를 해체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에서 민주화가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그 운동의 에너지가 민주화 이후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국민적 요구가 분출해도 정당체제가 이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해 생기는 괴리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국가적 현안이 발생하면 정치권 밖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정당이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고 정제해서 표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박상훈은 “광장의 촛불집회 그 자체에 민주주의의 상상력을 묶어 두려는 것, 대중을 선거와 정당, 의회와 같은 정치의 세계로부터 떼어놓으려는 것”을 경계해야 할 현상으로 꼽는다.

국회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았다. 상황을 기민하게 판단해 적기에 대처해야 할 때다. 하지만 정당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여당이야 그렇다 치고, 야당들이야말로 문제다. 국정 농단과 헌정 문란의 실태가 폭로되고 단죄되는 과정에서 언론이 앞서고 검찰이 뒤따르는데 야당은 보이지 않는다. 국정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헛발질까지 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주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했다가 일방적으로 철회했고, ‘계엄령 준비’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요즘 SNS 등에서 정치 논의가 활발한 데 비해 야당들의 대응은 뒷북치는 감이 있다. 촛불집회에 편승해 반사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당 지지를 철회한 계층이 야당 지지로 바뀌지 않고 무당층으로 남아 있다. 이런 현실을 야당들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정당은 사회적 가치와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정치적 결정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야당들은 어떤 비전을 내놓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집권을 위한 정치적 계산은 한참 후에 해도 된다. 촛불집회에서 국민의 순수한 열정이 발산되고 있다. 야당에게 정권을 거저 넘겨주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야당들이 제 역할을 해야 국정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야당들에겐 지금이 기회이자 위기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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