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낱장으로 사다 쓸 수밖에 없었던 그 연탄은 가스 중독을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거느렸다. 연탄가스에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었지만 운 좋게 자다가 깨어 간신히 바깥으로 기어 나왔을 때 흔히 찾던 구급약도 바로 김장독에 묻어둔 동치미였다. 김장과 연탄이 물리적인 월동 품목이었다면, 신춘문예는 많은 ‘문학청년’들에게 정신적인 난로였고 희망이었고 등대였다. 젠더와 노소를 떠나서 문학에 목을 매는 문학애호가들을 통칭하여 문학청년이라고 불렀거니와 그냥 ‘문청’으로 더 잘 통하는 말이다.
신춘문예는 알다시피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문예행사다. 일제강점기에 발표 지면이 극도로 적었을 때 신문이 문예지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고, 매년 새해 아침에 신인을 발굴해 내보내는 행사로 시작됐다가 지금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지면들이 늘어났고 등단 경로도 다양해져서 신춘문예는 그만 없애는 게 좋다는 무용론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까지 폐지한 매체는 보이지 않는다. 응모자들도 더 늘어나는 추세다. 매년 새해 아침을 시와 소설로 여는 세계 유일의 나라인 것이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디지털시대의 감성 환경에서 오히려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전통’이 돼 버린 셈이다.
기온이 내려가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추워질수록 문청들의 가슴은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김장과 연탄으로, 털장갑과 목도리만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 간절한 기원을 담은 소설과 시에 몰두하는 이들이 정신적 가난과 추위를 극복하는 궁극의 유일한 해법은 저 좁은 신춘문예의 관문을 통과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장르별로 단 한 명만이 영광을 안는 몰인정한 제도인 것을. 이들도 쓰는 행위 그 자체로 기실 위로와 보답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는다. 가슴에 화덕을 품은 모든 이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