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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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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7 21:18:41 수정 : 2016-12-07 21: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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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얼마 남지 않은 한 장의 달력 앞에서 공허한 초조함이 앞서는 이유는 비단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신년 계획을 절반도 이루지 못하고 덧없이 한 살을 더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아닐까 한다.

나이란 세월 속에 머문 길이를 나타내는 것. 그 길이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과 가슴 아팠던 희로애락의 흔적이 세월의 공간속에 보석처럼 박혀 저마다의 빛을 간직하는 것 같다. 스마트 시대에 의식주가 편리하고 풍요해졌지만 그것을 얻는 노력은 빈궁했던 시대보다 더 수고스러워진 것이다. 이제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급변하는 시대에 삶의 기반이 약해져 현대인은 불안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경제개발시절 대다수의 국민은 평등한 가난이라 생각하며 감수했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8000달러의 풍요에도 우리 사회의 다수는 상대적 불평등이 심하게 존재한다고 여긴다.


박명식 수필가
옛 속담에 ‘물고기는 먹이만 볼 뿐 낚싯바늘을 보지 못하고, 사람은 이익을 볼 뿐 위험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속임수로 얻은 빵에 맛들이면 언젠가 반드시 입안에 모래가 가득한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하늘의 뜻은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라는 구절이 있다. 공자의 제자 중 으뜸이었던 안회는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았으며, 잘못된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二過)를 실천한 훌륭한 제자였으나 가난 속에서 32세의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로 죽었다. 반면 악당 도척은 매일 죄 없는 백성을 죽여 그 살로 회를 치고 포를 떴을 만큼 악행을 일삼았는데도 장수했다.

이처럼 선을 행해도 화를 얻고 악을 행해도 복된 이가 있으니 하늘에도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거나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과 하늘이 내리는 축복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예컨대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욕망을 내려놓도록 가르쳤다. 수덕사 여승이었던 일엽 스님은 “남이 나를 팔아서라도 잘될 수 있다면 나는 창녀가 되도 좋다”며 깊은 희생적 담론을 펼쳤다.

한편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라며 풀잎 위의 이슬 같은 허무한 인생사를 회한으로 표현했다. 인간이 어찌 화(禍)와 복(福)의 깊은 섭리를 정의할까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온전하게 만족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거친 찬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국토를 지키는 국군 장병들이 있다. 또한 질병퇴치를 위해 어느 의학연구실의 창에는 지금도 환한 불이 밝혀져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푸른 지구를 살리려 사막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노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직 우리는 희망적이지 않나 싶다. 무지개를 보려면 소낙비를 참고 견뎌야 하고, 영롱한 진주가 아픈 조개의 살 속에서 거룩하게 태어났듯이 말이다.

박명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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