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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예술이 된 ‘ 위로의 한잔’

입력 : 2016-12-13 21:27:19 수정 : 2016-12-13 21: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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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바리스타에 듣는 ‘라테아트의 세계’
허영만의 만화 ‘커피 한 잔 할까요?’는 커피 한 잔에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운다.

“내 꼴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는데 커피만 마시면 행복해지니…”라며 커피향에 빠져드는 백수 청년, 한국에서의 교환학생 시절 위로를 준 하숙집 옆 커피 자판기를 찾아왔다가 ‘판매 중지’ 안내를 보고 좌절한 나머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몸부림치는 미국인,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용기와 편안함을 주는 커피를 대접한 적이 있는가”라고 말하는 바리스타,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게 “너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준비할게. 그 커피를 마시면 봄의 따스한 기운이 네 안의 화를 풀어줄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시인까지. 이 책 속 ‘커피는 영혼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작가 알랭 스텔라의 말처럼, 커피는 위로가 절실한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을 위한 음료다.

콜드브루에 크림을 얹은 뒤 그림을 그리는 ‘크리마트’는 커피 위의 예술로 불린다. 이강빈 씨스루 대표가 크리마트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언 마음 녹이는 위로의 한 잔

커피 중에서도 우유와의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어떤 상처도 부드럽게 어루만질 듯한 라테는 대표적 겨울 음료다. 겨울이 올 때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 커피업체들이 각양각색 라테 베리에이션 메뉴를 선보이려 골몰하는 이유다.

특히 라테 위에 그려지는 라테아트 덕에 눈으로 먼저 ‘힐링’이 되곤 한다. 라테아트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시애틀 에스프레소 비바체의 데이비드 쇼머가 나뭇잎 모양 라테아트를 일컫는 ‘로제타’를 선보이며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그림인 로제타와 하트 외에도 최근엔 글씨 쓰기, 거품을 이용해 입체감을 준 ‘3D’ 아트, 각종 과일이나 빵 등 ‘고명’을 올려 꾸미기까지, 다양한 응용 아트가 등장하고 있다. 만화 주인공 바리스타 박석의 말처럼 “겉모양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맛으로 호기심을 충족시켜야”하는 라테아트는 이 시대를 위로하는 책무를 아는 듯 열심히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초 열린 ‘2016서울카페쇼’에서는 ‘컬러’ 아트가 중심에 섰다. 이 ‘커피 위의 예술’을 선보인 바리스타는 18세에 커피 바리스타를 하겠다며 무작정 고수들을 찾아나선 뒤, 군대에까지 커피머신을 들고 갔을 정도로 커피에 절실하게 매달렸던 스물다섯 청년 바리스타 이강빈씨다. 그는 “스무살에 군대를 가면서 지금껏 배운 커피를 잊을까봐 무작정 머신을 들고 갔다”며 “간부면담을 하면서 이곳에 카페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더니 황당해하면서도 어디 한번 해보라며 허락을 받게 돼 행정반에 카페를 차리기도 했다”고 했다.

◆“기술에서 예술로”


이 바리스타는 인스타그램에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기막힌 솜씨로 라테 위에 그려낸 뒤 커피를 엎지르는 ‘커피 퍼포먼스’로 하야를 촉구하기도 했는데, 이 영상을 2만6000여명이 조회하며 호응했다. 그는 라테아트의 세계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카페 씨스루에서 만난 그는 라테아트가 과거엔 바리스타끼리 겨루는 ‘기술’이었다면 지금은 예술이자, 소비자와의 소통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엔 잔을 흔드는 기술, 복잡한 패턴 구사를 보면서 바리스타들끼리 ‘와 대단하다’, ‘어떻게 한 걸까’ 하고 놀라며 연구했지만 소비자들은 막상 ‘그냥 나무 그림이네’ 하고 받아들일 뿐이고, 오히려 기본에 해당하는 하트를 하나 더 그려주는 데서 감동받는 모습을 봤다”며 “그만큼 바리스타와 소비자 간 거리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에 비해 지금은 소비자가 봤을 때 직관적으로 뭘 표현했는지 바로 알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넣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다섯 가지 색이 담긴 무지개라테를 보이며 “맛은 기존 라테와 같으면서도 색감을 담아 손님들에겐 특별한 추억이 된다”고 설명했다.

무지개라테와 크리마트
◆신메뉴는 노력의 결실


이 바리스타는 표현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아예 새로운 메뉴까지 개발했다. 콜드브루에 크림을 얹은 뒤 라테아트처럼 그림을 그려주는 ‘크리마트’다. 2년 전쯤 처음 내놓은 크리마트는 이제 말레이시아, 홍콩, 시애틀 등 도시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커피렉에서 일하던 시절, 영업이 끝나면 혼자 남아 ‘나만의 메뉴’ 개발을 연구하던 중 크리마트가 나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어, 이때 커피 맛이 변하지 않도록 차가운 커피를 이용한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커피를 갖고 노는 걸 좋아해서 여러 재료를 섞어서 먹어보면서 신메뉴 개발을 했는데 10잔 중 8잔은 먹자마자 싱크대에 뱉어야 할 정도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에 6, 7잔씩 먹고 버리며 크리마트가 완성되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올해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이 한국에서 나왔을 정도로 우리나라 바리스타들의 실력은 훌륭하다. 그의 바람도 호주식 라테 플랫화이트처럼, 한국에서 시작돼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커피가 나오는 일이다. 그는 “프라푸치노나 아메리카노처럼 하나의 커피메뉴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 ‘크림+아트’가 아닌 ‘크리마트’로 이름붙였다”며 “크리마트가 보통명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거품은 라테의 생명… 집에선 믹서기 이용을

라테는 에스프레소가 밀도가 높아 우유와 그림을 받쳐주는 원리로 만들어진다.

에스프레소를 내린 뒤 밀도 높은 스팀밀크를 만들고, 얇고 고운 털이 촘촘한 천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벨벳밀크를 만든다. 미세하고 조밀한 거품을 만드는 게 라테의 생명이다. 70도를 넘기면 우유지방과 공기층이 분리되고 단백질이 변해 텁텁해지기 때문에 70도를 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적정온도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온도가 너무 낮아도 비리거나 우유맛이 강해 커피맛이 덜 느껴진다.

우유를 완성한 뒤엔 스팀피처를 태핑해 표면의 기포를 깨준다. 잔을 기울이면서 두 팔을 동시에 움직이며 세밀한 우유줄기를 따라 내려준다. 두 팔을 따로 동시에 움직이는 어려움을 허영만은 만화 ‘커피 한잔 할까요?’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양손이 따로놀지만 음악을 한곳으로 몰고가는 것처럼”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머신이 없는 가정에서 커피와 어울리는 적당한 우유거품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적정 온도까지 우유를 데운 뒤 믹서에 넣고 10∼15초간 돌려보자. 풍부한 우유거품이 만들어진다.

이강빈 바리스타의 크리마트는 라테와 달리 콜드브루에 크림을 얹는 찬 음료다. 달달한 크림을 뚫고 입 속으로 뭉근하게 들어오는 커피 맛이 아이스 아인슈페너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요즘처럼 얼음이 싫을 때 딱 좋을 맛이다. 컵 안에 설탕 시럽을 놓고 콜드브루 또는 차갑게 중탕한 에스프레소, 우유 약간, 크림을 올린다. 컬러 아트를 위해선 초코나 베리 등 시럽, 마카롱을 만들 때 쓰이는 식용색소를 사용한다.

참고: 허영만, ‘커피 한잔 할까요?’, 예담 허형만, ‘커피스쿨’, 팜파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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