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은 원칙적으로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자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오바마케어가 서민들에게 치료 기회를 넓히고 병원의 문턱을 낮추기는 했지만 중산층과 부유층에게 보험료 부담을 높였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을 고려한 접근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당장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면 마땅한 대안이 없어 건강보험의 공적 기능이 거의 상실된다는 점이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중적인 건강보험이 폐지되면 혼란이 극심해지고 치료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오바마케어 폐지 여부를 놓고 공화당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폐지하면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고, 현행대로 유지하면 공약 파기 논란을 부를 수 있어서다. 이날 발표된 미 의회예산처(CBO)의 추정에 따르면 오바마케어 폐지가 현실화하면 법적 효력이 멈추는 첫해에만 최소 1800만명이 건강보험 혜택을 잃는다. 건강보험 미가입자는 10년 이내에 32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CBO의 경고이다.
실비아 버웰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CBO 보고서는 대안의 중요성을 보여준다”며 “대안 없는 오바마케어 폐지는 보험료 상승 등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화당이 현실적인 조정을 해낼 것”이라며 집권당의 태도 변화를 기대했다.
트럼프정부와 공화당이 폐지에 가속도를 높이면 역풍이 불 소지도 다분하다. 거듭된 폐지 주장에 오바마케어가 과거에 비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월스트리트저널(WSJ)·NBC뉴스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오바마케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오바마케어에 대해 ‘좋은 정책’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45%, ‘나쁜 정책’이라고 한 사람은 41%였다. 2009년 4월 이후 오바마케어와 관련된 여론의 흐름을 조사해 온 WSJ와 NBC는 오바마케어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45%에 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케어 폐지 여부를 묻는 질문엔 미세 조정과 현행 유지가 각기 44%와 6%에 달했다. 반면 대수술과 완전 폐지에 동의한 비율은 33%와 16%에 그쳤다.
트럼프 당선자가 새로운 건강보험 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오바마케어 폐지에만 목청을 높일 경우 여론을 의식해 공화당 내부에서부터 반발 목소리가 나올 개연성이 크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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