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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아메리카 인사이드] 트럼프, “대통령 품위? 아직도 선거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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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8 12:00:00 수정 : 2017-02-18 1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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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직 최고통치권자로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주의 국정운영을 지켜본 미 언론들은 대부분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현실을 무시하는 트럼프 정부의 위험한 접근법을 다뤘고, 정치전문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는 트럼프가 선거 유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짚었다.
 
그가 그나마 호감을 드러냈던 보수적 뉴스채널 ‘폭스뉴스’에서도 비판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이들 언론의 지적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통치권자로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여전히 대선 유세를 지속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국정최고책임자가 아닌 후보자’로 인식하거나 드러내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추려본다. 일부 한국 독자들은 이런 모습에 기시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 이유를 따져본다. 선거 정국이 도래하고 있는 한국에 시사점을 주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①트럼프 정부의 타산지석-국민통합과 멀었던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출범하면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 설치는 국민적 화합을 위한 노력이 일환이었다고 박근혜 정부는 설명했다. 위원장엔 대표적인 동교동계 정치인 한광옥을 임명했다. 한광옥은 대선 막판에 박근혜 지지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첫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DJ(김대중) 최측근으로 활동했던 당사자였다. 한광옥은 이제는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청와대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DJ 청와대의 첫 비서실장이 박근혜 청와대의 사실상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일하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력했다면 이번 정부는 국민적 갈등 치유에 노력했다는 기록을 남겼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DJ와 박근혜를 둘 다 모신 원로 정치인 한광옥은 대통합을 떠받들었던 정치인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선 유세 막판 후보로서 자신이 약속했던 ‘100% 대한민국’의 실천을 위해 대통령 박근혜가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말이다. 그런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시도가 된 정황조차 많지 않다. 대선 전략상 그런 선언이 필요했을 수는 있지만, 유권자들로서는 애초 난망한 기대였던 셈이다.

박근혜 정부 4년은 그만큼 국민통합과는 무관한 기간이었다. 국정농단 의혹에서 드러났듯 국민통합은 고사하고 여당 내부의 통합도 이끌어내지 못한 게 박근혜의 청와대였다. 통합 대신 이념적·지역적 동질감을 가진 집단을 중심으로 국정을 이끌어왔다. 자신들의 기준에 들지 못한 이들은 배제했고, 더러는 ‘배신자’와 ‘대한민국 파괴세력’ 등으로 분류했다. 한때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 중 누구보다 많은 배신자를 양산한 게 박근혜 정부였다. 김무성을 필두로, 유승민, 전여옥 등은 ‘친박’의 상징이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배신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맹목적인 ‘편가르기 사고 방식’ 때문에 권력을 향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작동되기 힘들었다. 이는 고스란히 모두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권력 집단은 물론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통령이 대통령답게 처신하지 못한 후폭풍은 그만큼 컸다. 대통령 박근혜가 후보 시절의 ‘피아’ 구분에서 벗어나 모두를 진정하게 아우르는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2013년 청와대에 입성한 뒤 선거과정의 분열과 갈등은 잊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②지금의 혼란? “모든 잘못은 오바마와 언론 때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직전인 1월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 도중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한국의 탄핵 정국이 깊어지는 와중에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에서도 이런 불안한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전체 국민이 아닌 지지자들을 향한 일정과 발언을 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멜번으로 이동해 대규모 유세를 하기로 한 것만도 그렇다. 그는 트위터에서도, 16일 기자회견장에서도 플로리다주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에서 지지자들을 만나기로 했다며 동참을 촉구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집회 참여를 ‘유세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이같은 집회 참여에 지지자들이 아닌 일반 국민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백악관에 입성해서 자신과 정치적인 지향적인 같은 유권자들을 상대로 대규모 군중 집회를 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물러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곧잘 끄집어내곤 한다. 언론과 거센 공방을 벌였던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난장판’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했다. 누구도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언론은 이를 적극 비판했다. 그리고 17일엔 언론을 향해 “미국인의 적”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현재의 혼란은 ‘잃어버린 8년’(오바마 정부 통치 기간)과 현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에 있다는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언론에 대한 불편한 기색은 미국이나 한국 정부나 마찬가지이지만 트러프 정부는 정도가 심하다. 이전 정부에 책임을 묻는 모습은 어디에서 많이 목격했던 일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과거 정부에 책임을 물었던 모습이 겹쳐진다.

미국인들의 생각도 그럴까.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57%를 상회하는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현직인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기관에서 발표된 그의 지지율은 50% 이하이다. 40%인 경우도 많다. 타겟을 잘못 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기간도 아닌 집권 이후의 모습치고는 대단히 잘못된 방향 설정이다. 국민들은 곧 그의 말을 식상하게 여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우리에게는 취임 이후는 물론 대선과정에서도 상대당인 전직 대통령의 잘못을 끄집어내지 않으려고 했던 대통령이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당시 현직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최대한 자제했다. 대선 이후 어차피 물러날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후보 본인에게나 국가적으로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기조였다. 대선이 끝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후보의 경쟁자였던 여당의 이회창 후보는 달랐다. 그는 한때는 총리로서 대통령으로 모셨던 김영삼 대통령을 공격하며 전선을 키웠다. 외환위기 책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선긋기 시도였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③대선 패배자 힐러리도 곧잘 불러내 비아냥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16일(현지시간)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날에서 열린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우표 기념식에 참석해 크게 웃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자신에게 패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거론한 것은 더 모양새가 이상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이 크게 이겼다는 선거 결과를 언급하거나 대선 TV토론에서 언론이 차별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12차례 클린턴 전 장관의 이름을 거명했다.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포용해서 통합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선언은 고사하고, 대선 패배로 상처입은 클린턴 전 장관 지지자들의 마음을 후벼판 것이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가장 큰 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기자가 묻지도 않았지만 그는 그 자랑을 기자회견장에서도 꺼내들었다. 사실 관계도 틀렸다.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트럼프 대통령보다 적은 표차로 승리한 역대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장에서 이런 주장의 잘못을 지적받자 “누가 알려줬다”며 대통령답지 않은 변명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패배자를 배려하는 전통을 지닌 미국의 정치문화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즉흥적일 뿐 전략적이지 못하다. 이날 기자회견도 애초엔 상원의 인준 표결을 앞두고 자진 사임한 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대체하는 내정자에 대한 설명을 위해 마련됐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일문일답은 이날 오전까지도 예정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것은 어쩌면 지지자들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 용도인지도 모른다. 탄핵 정국 와중에 대통령 박근혜가 일반 대중은 좀처럼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을 내놓을 때 지지자들이 호응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④안보문제? “기밀정보 보도 자체가 음모, 유출한 정보기관의 잘못”

미국 시위대들이 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캐치프레이즈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빗대 ‘미국을 다시 생각하게’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시카고=신화통신·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심각한 것은 국가안보에 대처하는 자세다. 미 의회와 언론에서는 ‘러시아와 연계 의혹’에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안보문제를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보기관이 국가비밀을 언론에 노출해 ‘거짓 뉴스’가 양산됐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 미친 러시아의 영향과 이로 인한 위협 등을 고민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분위기도 풍기지 않았다.

정보 유출에 대한 이중적 태도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당시 위키리크스가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 스캔들’과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해킹 자료를 유출하자, 이를 적극 반기며 환호했었다. 하지만 이후 입장이 바뀌었다. 그는 트위터에 “엉터리인 ‘러시아 연계 의혹’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에서 패배한 것을 덮으려고 하는 시도”라는 글을 남겼다.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사퇴한 뒤엔 그 배경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이 끔찍한 손실을 만회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후보 및 민주·공화 양당의 상원의원들이 오찬을 할 때는 지난 대선에서 광범위한 (민주당의) 선거 부정이 자행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이 최고통치권자로 국정에 당당하게 나서야 하는데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패배한 클린턴 전 장관을 중점 겨냥하면서 말이다.

개인의 감정이 실린 정제되지 못한 발언은 선거유세에서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난장판을 물려받았다’는 표현을 비롯해 ‘끔찍한’, ‘망가진’, ‘파멸의’ ‘재앙’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유세 도중 상대 후보와 비판자들을 경멸하던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런 모습에 (여전히 선거 정국인) 백악관 진영의 가장 탁월한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이런 모습들은 자신의 골수 지지자들은 뭉치게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중도 성향 유권자들마저 등을 돌리게 할 수 있다. 출범 1개월이 가까워 오지만 그가 아직도 대선 유세중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들 때문이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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