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과 실업급여가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육아휴직 건수가 늘면서 실업급여 재정의 건전성이 떨어지고 있다.
출산·육아를 국민의 건강권으로 인식해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육아휴직 급여를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계정에서 지급한다.
지금까지 사회의 관심은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현실 개선에 맞춰졌다. 육아휴직을 ‘그림의 떡’으로 만드는 ‘사내눈칫법’은 여전하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부모들의 열망과 이를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덕에 육아휴직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지금과 같은 증가 추세라면 향후 고용보험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각 당의 대선후보들은 ‘육아휴직 급여를 더 많이 주겠다”고 경쟁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체급이 작은 고용보험 기금에 주목하지 않는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모성보호 급여 지출액은 2002년 257억원에서 지난해 8840억원으로 34.3배 증가했다.
이로 인해 모성보호 급여가 실업급여 계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에서 15.1%로 5.4배 늘었고 반대로 실업급여 계정의 원래 목적인 ‘실업급여’는 91.9%에서 83.5%로 8.4%포인트 줄어들었다. 실업급여는 직장을 잃은 근로자의 재활을 돕기 위한 지원금으로 고용노동법은 실직자가 대거 늘어나는 경제 위기 상황을 대비해 매년 지출액의 1.5∼2배 수준의 법정적립금을 쌓아놓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실업급여 지출액 대비 법정적립금의 비율은 0.8배로 최소 기준의 절반에 불과했다. 감사원에서 실업급여 법정적립금 유지 방안을 마련하라고 경고까지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 8000억원대였던 모성보호 급여가 올해 1조원대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며 “이 추세대로라면 실업급여 계정에서 모성보호 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져 법정적립금 기준을 맞추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육아휴직 급여제도가 도입된 2001년 건강보험의 재정 형편 때문에 출산·육아휴직 급여를 고용보험에서 지급하게 됐다. 사실 건강보험이든 고용보험이든 급여의 출처가 중요하지는 않다. 문제는 제도의 안정성과 보편성이다.
국내 모성보호 제도는 ‘낸 만큼만 돌려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면 혜택을 받을 수 없고 부담하는 보험료율 수준에서 지원을 받을 뿐이다. 지난해 고용보험에 투입된 정부 지원금은 700억원으로 모성보호 지출액의 7.9%에 불과했다.
반면 출산·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한 대부분의 나라는 조세 또는 ‘사회보험+조세’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보험에만 맡기면 지원 확대가 어렵고 대상이 늘수록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세부담률이 한국의 2∼3배에 달하는 덴마크(100% 조세)와 스웨덴(부모보험)은 모든 부모에게 출산·육아휴직 급여를 지원한다. 사회보험 형태로 운영하는 오스트리아·핀란드·캐나다 등은 재원의 최대 70%를 조세로 충당하며 임금근로자 외의 직종에도 혜택을 준다.
이렇다보니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도 어렵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등으로 대상을 넓히는 논의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육아휴직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하려면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선후보의 육아공약이 방향은 맞지만 조세 투입과 보험료율 인상 등 재원 확보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조건 “많이 주겠다”고 선심만 보이지 말고 확대 여건 조성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실업급여 재정만으로 확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하대 윤홍식(사회복지) 교수는 “사회보장세를 높이고 재정을 투여하는 것은 증세와 연관된 문제”라며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최저점에 있는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과제이나 육아휴직 제도의 활성화를 넘어 궁극적으로 복지국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언젠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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