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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비가 하늘의 뜻으로 내려지는 것이라 여겼다. 삼국시대부터 가뭄이 심하면 시조묘나 명산대천에 비 내려줄 것을 비는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도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으면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냈다. 역대 임금이 지낸 기우제를 상세히 기록한 ‘기우제등록’을 남겼다.

기우제를 가장 열심히 지낸 임금이 태종이다. 재위 18년 중 한 해를 빼고는 매년 기우제를 지냈다. 말년엔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뭄을 해갈할 단비를 기원했다. “날씨가 이와 같이 가무니 백성들이 장차 어떻게 산단 말인가. 내가 마땅히 하늘에 올라가서 이를 고하여 즉시 단비를 내리게 하겠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실린 글의 한 대목이다. 이튿날 태종이 승하하자 큰 비가 왔는데, 이후로 매년 태종 기일인 음력 5월10일 비가 내렸으므로 사람들이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렀다고 한다.

세종 때는 가뭄에 과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측우기가 발명됐다. “근래 세자가 가뭄을 걱정하여 비가 올 때마다 비가 그친 후 땅을 파서 깊이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정확한 깊이를 알 수 없어 구리로 된 기구를 궁중에 설치하고 그 그릇에 고인 빗물을 재어보았다.” ‘세종실록’ 1441년 기록이다. 훗날 문종이 된 세자가 측우기 발명에 깊이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호조에서 연구 결과를 세종에게 보고했고 그릇 규격 등을 보완해 이듬해 측우기를 이용한 전국적인 강우량 관측·보고 제도가 확정됐다.

지금 전국에서 봄가뭄이 심각하다. 논바닥은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밭에선 흙먼지만 날린다. 전국 각지의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농민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모내기철에 모내기는 고사하고 온종일 물 나올 만한 곳을 찾느라 분주하다. 어제 많은 지역에 비가 내렸지만 가뭄 해갈에 턱없이 모자란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부터 5월20일까지 강수량은 111㎜로 평년의 54%였다. 6∼7월 강수량도 평년보다 적을 것이라고 기상청은 전망했다. 농민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진다. 정부가 조선 임금들 못지않은 정성으로 봄가뭄에 대처해야 할 때다. 국가 물관리체계부터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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