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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3월 영조가 눈을 감았다. 사도세자의 죽음, 서얼의 역모, 당쟁과 탕평…. 파란 많은 52년의 치세. 영조는 어떤 생각으로 임금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팔도로 가는 어사들에게 한 말이 남아 있다.

“나라는 백성에 의지하고, 백성은 먹을 것에 의지한다. 각 도에 흉년이 들어 밥을 먹어도 맛이 없고, 잠자리에 들어도 편치가 않다. … 임금 자리를 이어받아 백성을 불길에서 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인이 백성을 떠밀어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것이니라. 어사들은 내 뜻을 알고, 황정(荒政)을 살피도록 하라.”

황정은 흉년에 백성을 구하는 정책이다. 영의정 김양택이 영조를 기리며 지은 애책문(哀冊文). “번개와 천둥이 치면 얼굴빛을 바꾸고(震雷則變)/ 밤낮 두려워하고 조심해(夙夜怵惕)/ 놀이와 잔치를 즐기지 않았다(罔敢遊宴)/ 혹 큰 가뭄이 들면(歲或大旱)/ 목욕재계해 기도하고(齊明以禱)…” 조선의 중흥을 이룬 영조. 그의 정치 화두는 백성을 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영조를 이은 정조. 24세로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했다. 그해 젊은 임금은 초조했다. 장마가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진 탓이다. “단비가 장마로 변해 한 달이 넘도록 날이 개질 않으니, 농사를 망칠까 애가 탄다. 기청제(祈晴祭)를 입추까지 기다릴 수 없다. 15일에 시행하라.”

기청제는 비가 멎길 기원하는 제사다. 이 말을 한 날은 6월14일. 이튿날 기청제를 올릴 테니 준비하라는 말이다. 천제를 올려도 날이 개지 않는다면? 정치적 타격을 입는다. 노론은 정조를 마뜩잖게 여기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다. 왜? 할아버지 영조를 보고 자란 정조. 백성을 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알았다.

장마는 풍흉을 가른다. 풍흉은 치세와 난세를 가른다. 장마가 시작되면 백성의 운명도, 왕의 운명도 외줄 위에 놓였다.

장마가 시작됐다. 제주도에서 시작한 장맛비는 어제 전국으로 확산됐다. 장대비가 쏟아진다. 올해 장마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장마를 보는 눈은 저마다 다르다. 이맘때면 영조와 정조가 품었을 장마 걱정. 아집과 독선이 판치는 정치. 우리 정치에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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