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산책의 횟수를 줄이게 됐다. 푸른 여름 바닷길을 걸으면서 다른 아름답고 근사한 풍경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쩐 일인가 내 눈에는 해안도로며 바다로 난 길, 넘실거리는 파도에까지 둥둥 떠밀려 오는 쓰레기가 외면할 틈도 없이 눈에 들어오기만 했다. 플라스틱 음료수 병, 물병, 술병, 과자 봉지, 농구공, 양말, 운동화 등 그 종류가 다양한 데도 놀랐지만 어떻게 이런 천혜의 장소에까지 쓰레기를 버릴 마음을 먹었을까 싶어 더 실망스럽고 안타까웠다. 그냥 한번 잘못 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내버린 쓰레기가 풍경을 긁어놓고 있는 듯했다.
조경란 소설가 |
중간에 며칠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날, 공항 가는 택시에서 만난 기사분이 그 주변과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도 본 게 있어서 대화는 어느새 ‘넘쳐나는 쓰레기’로 집중됐다. 현재 매립용량이 거의 다 차버렸다는 근처 매립장과 침출수 문제며 불연성 폐기물의 처리 문제, 그리고 한번 왔다가 가면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일부 관광객에 대해서 토로하며 택시기사는 ‘양심’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쓰레기’라는 환경비평서에서 저자는 쓰레기란 우리의 “욕망이 빠져나간 사물”이라고 정의했다. 즉 제거의 대상. 쓰레기가 배출되고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잘 버리든가 잘 관리하든가 잘 제거하든가, 올바로 버리기만 해도 지금의 문제보다는 나아질 텐데.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문제가 아닌가. 남들도 그러니까 나도 그래도 된다 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해안가를 걷다 다 마신 플라스틱 물병이 거추장스러워서 아무 데고 휙 던져버릴 때.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닌데 뭘, 하는 잘못된 심리 기제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이 도덕의 영역 문제에 대해 이러한 두려운 말을 남겼다. “규칙성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하나의 도덕이 만들어진다”라고. 거리, 도로, 바닷가, 숲, 저수지에 의도적으로 버린 그 많은 쓰레기들, 그것을 행동한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규칙성에 대해 생각하자 ‘쓰레기’에서 읽은, 우리가 보는 모든 풍경이 언젠가 ‘쓰레기풍경(trashscape)’이 될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가진 도덕성의 근원은 ‘나는 도덕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하겠지만 타자의 눈에 있기도 할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는 곳보다 있는 곳에서 더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하니까. 몰래 버려지는 쓰레기가 한 해에만 18만t이라고 했던가. 새의 뱃속, 고래의 내장, 지구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무인도까지 어디든 가는 그 쓰레기들이.
저녁에 마을 쪽으로 나가면 양손에 흰색, 노란색 쓰레기봉지를 들고 꽤 멀리 떨어진 분류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 부부, 심부름 나온 듯한 청소년을 볼 수 있었다. 여러 명이 쓰레기 분류장으로 난 쭉 뻗은 갈대밭 샛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모습을 뒤에서 볼 때 나는 그 장면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 순간이 규칙성이 발생하는 지점, 즉 하나의 도덕이 유지되는 장면 같아 보여서. 며칠 전에 자발적으로 토요일마다 바다 쓰레기를 줍는다는 젊은 부부의 기사를 접했을 때도 그랬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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