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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마켓 무궁무진… 작가들 스스로 ‘휴먼 브랜드’ 돼야”

입력 : 2018-08-13 21:19:37 수정 : 2018-08-13 21: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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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려 / 50세 이후엔 새로운 삶에 도전 / 그림도 돈이 될수 있다는 글귀 / 홍대 길가서 보고 호기심 가져 / 미술과 유명브랜드 다양한 협업 / 국내 아트 컬래버레이션 이끌어 / 아트 티·아트 백 등 연이어 히트 / 2005년부터 젊은 작가 후원나서 / 인생즐기 놀이 문화터 '낭만공장' / 아름다운 풍광마다 10곳 지을 것 / 작가 창작동력 담금질 장소 원해 / 엉뚱하고 독특한 천재 산실 기대
마케팅 프로모션 회사 대표가 미술에 바람이 났다. 돈은 웬만큼 벌었지만 가슴 한구석엔 허전함이 자리했다. 지금껏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렸다.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궤도에 올라섰다. 냉혈한, 무데뽀, 독불장군, 완벽주의자…. 그에게 붙은 별명이 치열한 삶의 궤적을 말해준다. 열정 하나로 살아온 삶. 열정이 식는 순간 죽은 목숨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 제2막’, ‘인생 이모작’을 꿈꾸기 시작했다. 50세까지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면, 이후는 또 다른 분야, 새로운 삶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주)리더스컴의 주기윤(47) 대표 이야기다.

“마케팅은 상품이 판매되지 않거나 브랜드가 실패하면 그동안의 모든 과정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마케팅 프로모션 대행사로서 승승장구했지만 이런 무형적 가치에 대한 비존재감에 공허함을 느끼며 나 스스로는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은 잘 벌리는데 뭔가 보람이 없으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것이죠. 그때 홍대 길가 벽의 혈서 같은 낙서 ‘그림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왜?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저런 하소연을 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호기심이 나를 자연스럽게 미술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미술과 유명 브랜드의 다양한 협업을 성공시켜 국내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유행을 이끌었다. 아트 티, 아트 백 등을 히트시키면서 아트 상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난 2005년부터는 컬처 브랜드 아트피버(ART FEVER)를 만들어 젊은 작가를 후원하고 있다.
주기윤 대표는 “사람들이 내가 아티스트를 인큐베이팅한다고 했을 때 다들 비웃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열정을 다시 갖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고 말했다.

“예술로도 밥을 먹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출판과 전시, 컬래버레이션, 아트상품을 통해 방법을 찾아 나갔습니다. 아트피버를 통해서 배출한 밥장, 마리킴 등은 이미 주요 아티스트로 성장했죠. 국내 아트 브랜드로 첫 해외 진출의 성과도 거뒀습니다.”

그는 아티스트의 성장 스토리까지 팔았다. 힙합 장르의 탄생을 연상시킨다.

“1970년대 뉴욕 빈민가 뒷골목의 흑인 청년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놀고 싶은 대로, 욕망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나는 작가들의 욕망에 불을 지르면 되는 것입니다. 소설 ‘월든’으로 잘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내일 아침에 할 산책이 그리워서 잠을 설치지 못하고, 파랑새 우는 소리에 전율을 느끼지 못하거든 너의 봄날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라고 했던 말을 떠올려 봅니다. 그런 예민함이 살아 있다는 것은 욕망이 살아 있다는 것이죠. 미술도, 예술도, 삶도 거기서 시작됩니다.”

사업적으로는 50대에 은퇴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자 목표다.

“이 세상은 끊임없는 경쟁 사회이자 전쟁터 같습니다. 그러나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내 나이에 친구들은 만났을 때 공부 잘했다고 자랑하거나 20대 때 좋은 직장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없듯이 지금의 부귀영화나 지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많은 CEO 선배들의 말년을 봤을 때 그렇게 행복한 은퇴를 보내고 있지는 않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열정과 패기로 사업에 몰두해서 성공은 맛보았지만, 정작 자신의 자아와 삶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결국 권력이 떠나감과 동시에 허망함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자아를 찾는 연습, 자기 삶을 즐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곧 다가올 후년에 고독과 상실감을 끌어안은 채 후회하면서 살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즐기는 일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 나가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멋지게 즐기는 법을 알아야죠.”

그는 이를 위해 이른바 ‘낭만공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전국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요소마다 지어질 문화 테마 공간이다. 2020년에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에 1호 낭만공장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10호 정도 지을 예정이다.

“자신만의 진정한 놀이와 취미가 낭만이고 삶의 결을 똑바로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미와 여유를 누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나이가 들면 획일화된 취미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은 여유 있게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를 소개해 보고자 시도하는 사업입니다. 더불어 여러 놀이문화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팟 캐스트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소개하고 영상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낭만공장이 작가들에겐 창작의 동력인 욕망의 칼날을 담금질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 했다. 찍어낸 듯한 엘리트가 아니라 엉뚱하고 독특함에 몰입이 있는 엉뚱한 천재의 산실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주기윤 대표가 컬래버레이션으로 제작한 아트티와 아트백.

지난 6월 말, 그는 무명의 작가들을 자신만의 마케팅 방식을 통해 아티스트로 성장시키고 휴먼브랜드로 만들어 낸 지난 15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 ‘아트피버(ART FEVER),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도서출판 원북)를 펴냈다.

“지금 세상에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아트 마켓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가 하나로 소통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려 놨더니 유럽 컬렉터가 사갔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갤러리에서 그림 몇 점을 팔려는 시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전시도 젊은이들이 놀고 웃고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로 작은 전시였지만 일주일에 5000명이 넘는 방문객을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젊은 청춘들이 그림의 80%를 넘게 구입해 갔습니다. 온라인 갤러리와 홈쇼핑도 새로운 유통구조로 적극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작가들에게 브랜드와의 협업을 적극 권한다. 브랜드는 대중을 리드하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도 ‘휴먼 브랜드’가 돼야 합니다. ‘멀티 유스’도 이제 작가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그는 작가는 스타일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근한 예로 앤디 워홀이 예술계에 등장했을 때 어느 누구도 그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파티에 항상 깔끔한 정장에 타이를 매고 등장했기 때문이죠. 실상 단벌신사로 아르마니 정장과 셔츠, 심지어 넥타이도 단 하나로 버텼다고 합니다. 매일 세탁해 다음날 입고 나가는 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워홀의 패션 스타일로 인식했습니다.”

그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 그는 어렸을 때 집엔 걸린 풍경 수채화에 얽힌 사연으로 답을 대신했다.

“처음엔 외국 휴양지의 풍경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제주에 스튜디오를 지으려고 마련한 부지에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림 속 풍광과 일치해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의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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