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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흐르는 여울이 큰 돌을 만나 아프다고 소리칩니다

입력 : 2019-11-15 03:00:00 수정 : 2019-11-14 21: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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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싶다’ 아들과 불화, 가출한 이야기 담아

이재무 시인이 최근 펴낸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 싶다’(천년의 시작)에 올 들어 가출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음악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아들과의 오랜 불화로 인해 크게 다투면서 해서는 안 될 폭언에 손찌검까지 한 뒤 면목이 없어 방을 따로 얻어 나왔다는 것이다.

 

“늦은 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무늬 없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갖 상념과 회한이 들끓어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에 이를 수 있을까? 다 큰 자식과 불화하여 멀쩡한 집 놔두고 집 밖에 집을 구해 홀로 방에 누워 있자니 바위처럼 무거운 죄가 가슴을 짓눌렀다. 헛살았다, 헛살았다. 돌아가신 엄니의 한숨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집을 나오고 난 후 아내를 만나 오랜만에 깊은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자를 올곧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자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 집착하고 그로 인해 타자를 소유하려 하거나 억압하려 한다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한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평소에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서 깊은 성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들과의 화해를 기대하며 자신의 시 ‘돌과 여울’을 소개했다.

“급하게 흐르는 여울이 큰 돌을 만나 아프다고 소리칩니다. 안쓰러운 나머지 돌에게 원망이 들고 여울을 위해 저 돌을 꺼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순간 여울 때문에 돌은 또 얼마나 부대끼고 고되었을까를 떠올리니 이번엔 여울에 시달려온 돌이 안돼 보이고 그의 생이 불쑥 서러워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돌이거나 여울입니다. 어제는 여울이었다가 오늘은 돌이고 오늘은 돌이었다가 내일은 여울인 셈이지요. 여울은 돌을 만나 여울 빛이고 돌은 여울을 만나 돌 빛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미어 만든 빛깔인 셈이지요.”

이번 산문집에는 다시 집으로 들어간 시인의 ‘참회록’을 비롯해 삶과 문학에 대한 근년의 성찰을 담은 글들이 포진해 있다. 그는 표제에 담은 ‘쉼표’의 배경을 ‘작가의 말’에 시처럼 진설해 놓았다.

 

“지난날 나는 쉼표를 생략하거나 쉼표 없는 문장을 선호하며 살았다. 답이 없는 문장을 경멸하였다. 주장이나 의견이 없는 진술을 답답해하고 조소하였다. 나 이제 쉼표처럼 가쁜 숨결 쉬게 하고 가만, 가만히 세계를 음미하며 살고 싶다. 쉼표가 되어 질주를 멈추고 너라는 체언을 돋보이며 살고 싶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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