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론이고 식물도 살 수가 없는 동네예요. 집을 둘러싸고 있는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하루종일 나오는 쇳가루와 먼지 때문에 안 아프던 이들도 병을 얻는 곳입니다.”
25일 인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에서 만난 권순복(74·여)씨는 집 한켠에 쌓아둔 약봉지를 꺼내보였다. 2013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 뒤 매일같이 복용하고 있는 치료제와 3년 전부터 온몸에 생겨난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 등 종류만 5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인근 병원에 2∼3일마다 들러 처방을 받는다.
사월마을 토박이인 권씨는 과거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고 회상했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고 주변으로 논이 펼쳐졌다. 하지만 1992년 약 1㎞ 떨어진 곳에 서울과 경기·인천의 쓰레기를 묻는 수도권매립지가 들어서며 주거여건이 빠르게 악화됐다. 앞서 공장들은 손에 꼽을 정도만 있었지만 매립지 업무와 연관해 각종 폐기물 처리업체 등이 문을 열었다.
권씨의 남편인 김이곤(70)씨 역시 두피 전체에 피부병을 앓고 있다. 수시로 빨간 딱지가 생기고 가려워 긁으면 피고름이 나온다. 지금 사월마을의 주민이 120여명이다. 가정집과 10m 정도 떨어진 곳을 포함해 마을 인근에 주물·목재가공·순환골재 등 사업장은 165곳에 이른다. 대부분 1개 차량이 오갈 수 있는 생활도로를 두고 자리한 상태다. 그렇다 보니 주민들은 여름철에도 짧은 옷차림은커녕 창문을 열어 놓지 못한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도 집 밖으로 절대 빨래를 널지 않는다.
현지 주민들은 여러 공장에서 날아든 쇳가루 등으로 20여명이 암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또 주민 10명 중 6명가량이 호흡기 질환과 피부병을 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달 19일 환경부가 외부기관에 위탁해 발표한 건강영향조사 결과에서는 이들 질병이 주위 환경과 역학적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냈다. 다만 소음이나 미세먼지 농도 등이 다소 높아 거주지로 부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관할 서구에 이 문제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2017년 환경부에 조사를 청원한 주민들은 또다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모(83·여)씨는 “최근에도 이웃들이 암에 걸리고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공장 단지들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겠나”라며 “사람을 옮기든지 사업장을 옮기든지 서둘러 결론을 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지역 환경단체는 ‘쇳가루 공포’의 직접적 원인으로 수도권매립지를 지목하며 관련 특별회계를 활용해 피해주민 집단이주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쓰레기매립지로 인해 영세공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울러 예견된 상황을 외면한 인천시와 서구가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라고 강조한다.
장선자 사월마을 환경비상대책위원장은 “대기 중 미세먼지와 중금속 등이 인천의 다른 곳보다 높다는 환경부 발표로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소음과 악취로 수십년 피해를 봤으며 하루라도 빨리 해결책이 나와 제대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글·사진 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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