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업장, 기관, 학교 등은 '아파도 나온다'라는 문화를 '아프면 쉰다'로 바꿀 수 있도록 근무 형태나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합니다.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큰 부담 없이 등교나 출근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화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세심하게 실천하는 등 '일상적 방역'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면서 최근 정례 브리핑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지난 22일 '생활 방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범정부 계획의 일환으로 '사업장 내 거리 두기 지침'을 마련해 일반 직장인과 사업주에게 '아프면 집에 있기', '아파하면 집에 보내기' 등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아프면 쉬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직장인이 산업재해도 아니고 업무와 연관 없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병가를 내고 장기간 쉬기란 노동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기업별로 단체협약 등을 통해 상병 휴가를 쓰도록 하지만 대체로 기간이 짧다. 장기간 휴직이 필요한 경우에는 퇴직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현실은 오히려 일부 직장인에게 더 가혹하다. 아플 때 쉬는 것은 고사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아프지도 않은데 연차 소진, 무급휴직, 사직을 강요당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고, 실정법으로 보장된 휴업수당도 못받는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실제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3월 15일부터 일주일간 받은 제보 857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315건(36.8%)이 코로나19로 인한 무급휴가·해고·권고사직 등과 관련한 제보였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제보자 A씨는 "아웃소싱 업체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며 "권고사직서·무급휴가 신청서 작성을 강요당했다"고 했다. 호텔 용역업체 직원 B씨는 "강제 휴직으로 휴업수당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직장갑질119는 "임금 삭감과 무급휴직, 권고사직, 해고 등으로 직장인들의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정부에 노동자 생계 보장을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가 오래전부터 도입을 요구해온 이른바 '상병수당'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서 '아프면 쉬는 문화' 정착을 앞당길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상병수당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업무상 질병 외에 일반적인 질병과 부상으로 치료받는 동안에 상실되는 소득이나 임금을 현금 수당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보전해주는 급여를 말한다.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대부분 선진국은 상병수당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이 의료보험이나 다른 공적 사회보장 형태로 상병수당을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상병수당은 법적 근거는 있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강보험법 제50조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하지만 시행령에서 구체적 임의급여를 장제비와 본인부담금 두 종류로만 한정해 사실상 상병수당은 제외돼 있다.
정부는 아직 적극적인 도입 의지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상병수당 기초연구 결과를 토대로 중장기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건강보험공단이 3월부터 11월까지 '상병수당 도입 논의를 위한 기초연구'에 들어가기로 해 연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관심을 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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