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최대 피해지역으로 떠오른 미국 뉴욕시에는 항공모함 규모의 거대한 병원선이 들어섰다. 1000개나 되는 침대를 가진 이 병원선은 뉴욕항구에 들어서는 순간 웬만한 대형병원 하나가 도시에 생겼다고 할 만큼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미국의 한 언론은 그 병원선이 들어서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기사의 제목을 “팬데믹 속에서의 삶은 왜 초현실적(surreal)인가”라고 뽑았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도시 중 하나인 뉴욕시가 위험에 빠진 상황을 도우려고 세계 최대 규모의 병원선이 도착했지만, 정작 현재 뉴욕은 마치 인류의 종말을 묘사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텅 비어 있다.
현재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 도시에서 초현실적인 일상이 펼쳐진다. 한 평론가는 “현대미술이 탄생시킨 수많은 ‘-주의(-ism)’들 중에서 초현실주의만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어휘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인상주의’나 ‘입체주의’라는 말은 미술작품을 이야기할 때 외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요즘 같은 상황을 보면서는 쉽게 초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대낮에는 사람들로 가득해야 정상인 대도시의 거리가 텅 빈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초현실적인 현실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대낮에 텅 빈 거리’라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는 제법 역사가 깊다. 최초로 근대식 사진기술을 발명해낸 루이 다게르는 1838년에 사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찍는다. 파리의 탕플 거리를 찍은 이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거기에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최초의 인물사진인 셈. 하지만 특이하게도 드넓은 대로를 찍은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은 구두닦이와 손님, 단 두 명뿐이다. 왜일까? 당시의 은판사진술은 감도가 떨어져서 움직이는 물체는 잡아내지 못했고,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건물들과 역시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던 구두닦이와 손님만이 사진기에 남은 것이다.
2009년 53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받기도 했던 한국의 아티스트 김아타는 루이 다게르의 사진과 같은 방식으로 사진의 노출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방식으로 뉴욕, 파리 등의 도시를 찍어 대낮에 텅 빈 도시를 찍은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우리는 왜 이런 텅 빈 도시에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는 것일까? 일상적이고 익숙한 요소들이 완전히 낯선 분위기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낮의 뉴욕의 거리는 사진에서 익히 봤지만 항상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익숙한 도시 풍경에서 사람들이 실종되면 우리는 시각적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김아타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1838년의 루이 다게르의 사진도 붐비는 도시 풍경과 그걸 그렸던 파리 화가들의 작품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초현실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를 의도적으로 처음 시도한 화가가 있다. 바로 그리스 출신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다. 미술사에서는 데 키리코를 (가령, 녹아내리는 시계의 이미지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살바도르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하지 않는다. 본인이 스스로를 초현실주의 화가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초현실적 이미지들은 초현실주의 화풍이 유행하기 이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를 탄생시킨 프랑스의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였던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이 새로운 흐름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원천은 바로 데 키리코의 작품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1914년 작품인 ‘거리의 우울과 신비’다. 오후의 밝은 햇살과 짙은 그림자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이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 아득한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왼쪽에 등장하는 밝은 고전주의적 건물은 과장된 선원근법을 사용해서 현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지평선을 향해 달리고, 밝은 빛을 받으면서도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여자아이는 텅 빈 피아자(이탈리아 도시의 광장)를 향해 달려간다.
이 그림이 영화였다면 이 장면에서는 무슨 사운드를 사용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낮에 붐벼야 할 광장에 움직이는 인물은 혼자 굴렁쇠를 가지고 노는 아이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이가 달려가는 방향에 위치한 광장 한복판에는 어떤 알 수 없는 인물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여자아이에게 닥칠 위험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뿐 아니라 오른쪽 어두운 건물 옆에 세워둔 (마차가 끄는) 짐차는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이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런데 화가는 의도적으로 짐차 내부를 전부 보여주지 않고,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혹은 누가 숨어 있는지 몰라 불안하다.
데 키리코의 다른 작품들을 안다면 광장에 그림자로만 등장하는 인물은 아마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대개 이탈리아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석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이 작품이 주는 불안감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림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두운 구석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는 왜 이 도시가 텅 비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그림의 배경이 한밤이었다면, 혹은 도시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면 우리는 도시에 사람들이 없는 이유를 짐작하고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안심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도시는 깨끗하고, 태양을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막연한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뉴욕시에서는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들의 시신을 처리할 수 없어 대형 냉동트레일러를 병원 옆에 세워 두고 지게차로 시신을 채워 넣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낮의 텅 빈 뉴욕 거리에 놓여 있는 트레일러의 사진을 보면서 데 키리코의 이 작품과 작품 속 짐차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초현실주의를 탄생시키게 된 계기가 된 데 키리코의 1910년대 작품들은 엄밀하게는 두 시기로 나뉜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와 1915년에 이탈리아의 페라라에 정착한 시기다. 파리에서는 ‘거리의 우울과 신비’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면, 페라라 시기의 데 키리리코는 ‘위대한 형이상학자’(1917)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언뜻 보면 후자도 전자와 비슷한 배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기의 데 키리코는 화실용 마네킹, 혹은 자동인형(오토마톤)을 화면의 중앙에 배치한다. 현대의 로봇에 해당하는 이 자동인형은 텅 빈 도시에서 건물들을 포함한 주위의 모든 풍경을 압도하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대면접촉을 극도로 꺼리게 된 세상에서 도시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려면 앞으로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고 로봇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은 데 키리코가 100년 전에 그린 그림들을 마치 우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서로 보이게 만든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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