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입장에선 차라리 막아두는 게 좋습니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보기도 싫고, 무엇보다 담배꽁초 썩은 냄새 맡으면, 그 악취가 며칠 갑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네요.”
지난 21일 늦은 밤 10시쯤 찾은 마포구 홍대 거리. 으슥한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모여 있는 무리마다 대부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함께 있기도 했다. 이들 중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려쓰고 코와 입을 그대로 노출된 채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한 사람이 담배 연기를 장난치듯 내뿜으며 침을 뱉자 일행들은 따라 하는 듯 침을 뱉었다. 한명이 스마트 폰을 보면서 거친 욕설을 하자 일행들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지 채 10여분 지나지 않아 너도나도 담배 끝을 손가락으로 툭툭 튕겨 뿔을 끄고 당연한 듯 빗물받이에 버렸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 구석마다 구겨진 담뱃갑과 음료수 캔, 가래침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인근 전신주 근처 빗물받이도 예외 없이 담배꽁초로 가득했고, 특히 취객들의 토사물 등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 코를 찔렸다.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홍대 거리 둘러보면 빗물받이를 살펴보았다. 대로변 빗물받이는 비교적 깨끗했지만, 으슥한 골목길이나 좁은 길에 있는 빗물받이는 각종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가득했다. 일부 빗물받이는 핫도그 같은 튀김용 나무 꼬치나 어묵용 나무 꼬치도 가득 차 있었고, 포장마차에서 버린 듯한 기름이 잔뜩 낀 튀김 찌꺼기와 오물 등으로 들어차 있었다.
각종 고무발판 등으로 덮여있는 빗물받이도 많았다. 덮여있던 빗물받이도 쓰레기가 있기는 마찬가지. 반쯤 덮인 빗물받이는 담뱃값이 끼워져 있었고, 힘줘 꾸겨 넣은 듯한 소주병 뚜껑, 음료수 뚜껑까지 검은 때가 잔뜩 낀 채 구멍을 막고 있었다.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에서 오물이 흐르기도 했다. 이 오물이 빗물받이로 스며들거나 고무판에 고여 맡기도 힘든 악취를 풍기기도 했다.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른 채 담배를 피우던 정(45)모씨 “버리기는 쉽지만, 치우려고 하면 어간 힘든 게 아니에요”라며 “누가 하수구에 손 넣고 싶겠어요. 차라리 막아두는 게 편하지, 버려 봐야 고무판 위라 치우기도 쉬워요”라고 손가락 끝으로 고무 덮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 19일 오전 10시쯤 용산구 숙명여대 인근 상가 한 골목길. 올 첫 호우특보 발효된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많은 비가 쏟아졌다. 골목길에는 제때 치워지지 않았던 잔 쓰레기가 빗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빗물받이가 곳곳에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빗물이 흡수되지 않는 각종 고무덮개로 덮여있는 탓에 배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그 위로 그대로 흘러내려 갔다.
쏟아진 빗물이 도로는 물론 움푹 파인 빗물받이 위에 빗물이 가득 고여 있기도 했다.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은 빗물받이에는 각종 오물과 함께 퇴적물이 쌓여 넘칠 듯했다.
한 건물 배수관 아래 빗물받이는 넘칠 것을 대비해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었다. 빗물받이가 막히고 덮여있는 탓에 빗물은 경사면을 타고 흐르면서 유속은 빨라졌고, 건물 배수관에서 흐른 빗물까지 더해지자 좁은 골목길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사람들은 신발이 젖을까 흐르는 빗물을 위태롭게 피해 다녔지만, 물이 고여 있거나 유속 탓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신발 앞코를 타고 흘려 들어 흠뻑 젖을 정도였다. 좁은 골목길 탓에 차가 지나칠 때마다 혹여 자신에게 물이 튈 것을 우려해 피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인근 주민 이모(65)씨는 “청소하면 뭐합니까? 자고 일어나면 똑같은데”라며 “한두 명이 버리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는 결국 쓰레기가 쌓여 비가 올 때마다 타고 흐른다”고 지적했다.
◆ “물바다 잊었나”…또다시 꽉 막힌 배수구
도로 곳곳에 설치된 소형배수시설 빗물받이. 그러나 시민들이 마구 버린 담배꽁초와 각종 오물로 더럽고 냄새나는 거리의 쓰레기통이 변신한 지 오래다. 집중호우라도 내리는 날에는 쓰레기 때문에 빗물이 흘러들어 가지 못해 침수를 막기는커녕 저지대 주택의 침수피해를 발생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많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막혀 있던 빗물받이 쓰레기로 가득 차 들썩이거나 음식물쓰레기와 각종 오물이 섞여 도로로 역류하기도 한다. 또 퇴적물 쌓여 여름철 높은 기온에 쉽게 부패해 맡기도 싫은 악취와 벌레를 발생시킨다.
지난 2015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빗물받이가 막히거나 덮개로 덮여있으면 도심 침수피해가 더 커진다는 사실을 모형실험과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원의 빗물관·빗물받이 모형실험에서 빗물관이 쓰레기가 섞인 퇴적물로 막히자 역류(침수) 현상이 발생했다. 나뭇가지와 토사만으로는 빗물관이 완전히 차단될 가능성이 작았다.
빗물받이가 제 기능을 못 할 경우 실험에서 침수 수심이 1.4∼2.3배로 더 깊고, 보도블록 높이(19㎝)까지 침수가 일어나는 속도도 2배나 빨랐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반영해 2010년 9월 강남역 침수 현장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해 보니 각 빗물받이 덮개의 3분의 2가 막히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침수면적이 3.3배 더 넓어졌다. 당시 강남역 일대에는 총강우량 291.5㎜, 20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강도로 비가 내려 주변이 삽시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매년 악취와 침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장마에 대비해 4, 5월쯤 대대적으로 빗물받이를 청소 및 관리를 하고 있지만, 관계당국은 청소 뒤에도 쓰레기가 금세 다시 차오른다고 하소연한다. 또 빠듯한 인력 탓에 민원이 접수된 곳만 출동하는 식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상태다.
마포구청 한 관계자는 “마포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수구 특성상 냄새는 날 수밖에 없다”라며 “순찰을 통해 빗물받이 지속해서 관리를 하고 있다. 특히 악취가 심한 곳은 악취 방지용 빗물받이를 설치를 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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