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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4월의 봄 저녁, 한강 망원지구 수변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지나가던 필자는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수면 위로 수천 마리는 됨 직한 기다란 생물들이 춤추듯 떼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은 실뱀장어 같다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은 괴생명체가 나타났다며 연신 사진 찍기에 바빴다. 갯지렁이의 분류를 전공한 필자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려다 “갯지렁이예요”라고 내뱉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수면 위의 생물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궁금증이 해소된 듯한 표정을 짓는 반면 ‘그런데 갯지렁이가 한강에 왜?’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3월 중순에서 4월까지 한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갯지렁이가 떼 지어 헤엄치는 장면은 자주 보게 되는데, 사람들이 목격한 갯지렁이는 ‘참갯지렁이’라 불리는 종이다. 낚시 미끼로 많이 쓰이는 일명 ‘청개비(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의 8촌 정도라면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참갯지렁이는 왜 한강에서 떼 지어 헤엄을 칠까? 바로 번식을 위해서다. 서해 밀물의 영향을 받는 한강은 밀도가 높은 바닷물의 영향으로 강바닥은 일정 부분 낮은 염도를 유지한다. 평소 강바닥에 사는 참갯지렁이는 3월 중순에서 4월이 되면 다리는 넓적하게 헤엄치기 좋은 모양으로 변하고 암컷은 난자로, 수컷은 정자로 가득 찬다. 번식을 위한 준비이다. 참갯지렁이는 난자와 정자를 몸 밖으로 방출하여 수정시키는 체외수정을 하는데, 빛 등의 자극에 반응하여 일제히 수면 위로 떠 올라 떼를 지어 번식하며 수정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을 터트려 난자와 정자를 배출한 참갯지렁이는 생을 다하게 되고, 새롭게 수정된 자손들은 유생 시기를 거처 다시 성체로 자라게 된다.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목숨을 바친 참갯지렁이의 번식 행위였던 것이다.

아는 만큼 이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년 봄 참갯지렁이의 번식 행위를 목격하게 된다면 ‘참’으로 아름답고도 슬픈 참갯지렁이의 번식 행위임을 기억해 주길 바라본다.

박태서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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