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에서 청와대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며 환경부 공무원과 청와대 실무자 사이의 공공기관 임원 인사를 두고 수시로 주고받은 인사 협의 내용을 통해 청와대 개입 의혹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부장판사 김선희)는 전날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 전 비서관에게 각각 징역 2년6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취임한 지 6일 뒤인 2017년 7월 환경부 운영지원과 공무원이 당시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실 윤모 행정관에게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약력과 임기, 보수 등을 자료로 정리해 이메일로 전송했다고 판단했다. 윤 전 행정관은 이후 여러 차례 환경부 공무원을 만나 공공기관 임원을 교체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환경부와 청와대 간 협의는 2018년 4월 윤 전 행정관의 뒤를 이은 송모 전 행정관이 재직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송 전 행정관은 전임자의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아 ‘산하기관 임원 교체 현황’ 등의 문건을 수시로 이메일로 받았다. 문건 내용은 매번 조금씩 달라진 상황이나 환경부와 청와대 간 협의 내용을 반영했다. 이후 청와대와 환경부가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로 내정한 박모씨가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사실도 고스란히 송 전 행정관에게 보고됐다. 신 전 비서관은 박씨의 서류 탈락 소식을 듣자 환경부 운영지원과 공무원에게 직접 전화해 질책, “(환경부) 차관이 직접 들어와서 탈락한 후보자를 어떻게 할지, 앞으로 청와대 추천 후보자가 통과되도록 어떤 조치를 할지 책임 있게 확답하라. 박씨를 통과시키기 위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소상히 보고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청와대와 환경부 사이에 오간 대화와 지시를 토대로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피고인(신 전 비서관) 지위에 비춰 내정자를 확정하고 그에 대한 지원 결정을 하는 것은 피고인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며 윗선을 겨냥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어 ”김 전 장관이 원하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사표를 일괄 징구했고 거부하는 임원은 표적 감사로 사표를 받았다. 그 폐해가 심각해 타파돼야 할 불법적 관행”이라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은 최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내용 확인 후 추가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이제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며 “검찰이 불기소처분한 사건의 불기소이유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동일하게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에 대한 사퇴종용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사건을 재기하여 신속하고 철저하게 재수사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불기소 처분된 보훈처·원자력 관련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사건과 더불어
△청와대 특감반의 330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작성 사건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사건 △국무총리실·과기부·통일부·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재판부의 설명자료 어디에도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문재인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아니다”고 입장을 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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