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밝은 이에게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가장 빛난 스타는 연극 부문 여우주연상 이봉련이다.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 ‘햄릿’ 주연으로 큰 상을 탔다. 2006년 뮤지컬 단역으로 무대에 데뷔한 후 숱한 작품에서 배역 경중을 따지지 않고 좋은 연기를 선보인 결과다. ‘배우 이봉련’에 대해 봉준호 영화 감독은 ‘가장 주목하는 연극배우’로 지목했고, 이정은 배우는 “잠깐 등장해도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지난 1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봉련은 “시상식에 후보자로서 앉아는 있었지만 정말 상까지 탈 줄 꿈에도 몰랐다”며 “태어나서 상을 처음으로 받은 듯하다. 어릴 때는 성실하지 못해 개근상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유일하게 성실하게 일해서 받게 된 개근상처럼 느껴진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난 13일 수상식에서 ‘햄릿’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못다 한 수상 소감이 있는가.
“너무 떨려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야 하는데 빼먹은 분이 많아 큰일 났다 싶다. 정말 호명될 때까지 수상할 줄 몰랐다. 시상식장에 가면서 ‘수상 소감을 준비는 해야지’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 너무 쑥스러워서 그만뒀다. 상상도 해봤지만 끝을 맺지 못하겠더라. 그렇게 시상식장에 앉아서 발표 순간이 다가오니까 더욱 다른 후보가 모두 쟁쟁한 선배님들이라 ‘내가 타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호명되니 ‘햄릿’때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생각나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건 해야 한다’ 싶어서 동료들에게만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하고 동생, 그리고 남편, 그렇게 가족이 제일 소중한데…. 남편은 제 수상을 점쳤다. 자기 마음엔 제가 최고니까 달력 시상날짜에 ‘이봉련 백상’이라고 적었다. ‘이규회 배우님 사랑합니다’라고 하려 했는데 못하고 내려왔다. 또 엄마와 동생에게도 ‘사랑합니다’를 못하고 빠트렸다. 씨제스(소속사)에서도 연극과 방송을 병행할 수 있도록 힘써줬는데 회사 대표님 등에게 너무 민망했다. 배우가 연극과 방송 병행하는 게 무척 힘든데 회사에서 전폭 지원해줘서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 너무 감사드리고 싶다.” (2019년 10월 결혼한 이봉련 남편은 극단 골목길 선배인 배우 이규회다. 역시 백상예술대상에서 3관왕이 된 드라마 ‘괴물’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줘 화제가 됐다.)
-프로필을 살펴보면 수상 이력이 없는데 데뷔 후 첫 수상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상이다. 어렸을 때도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개근상도 성실하지 못해서 받아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엔 특출나게 뭘 못했다. 유일하게 연기로 상을 받았다. 너무 감사하고 큰 상인데 그 크기도 가늠이 안 된다. 유일하게 성실하게 했던 일에 주는 개근상처럼 느껴진다. 꾸준하게 버티고 잘 지내온 것에 대한 상이다. 이제까지 해 온 것이 누적된 결과인데 그 대표로 ‘햄릿’이란 타이틀로 받게 된 것 같다.”
-‘햄릿’은 극장 화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이 겹쳐 공연 연기, 일정 축소를 거듭하다 결국 온라인으로 단 사흘 공연한 작품인데 상을 가져다줬다. 정말 특별한 작품이 됐다.
“지난해 4월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이후 7월에 처음 대본 리딩을 하고 9월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극장 화재 등으로 개막이 연기되면서 연습도 한 달 더 늘어났다. 마스크 쓰고 연습하고 검술 훈련하고, ‘헉헉’거리다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다. 그만큼 배우들은 열심으로는 표현이 모자를 정도로 더 열심히 준비했는데 ‘서울시 천만시민 긴급멈춤’ 때문에 결국 공연 개막 전날 밤 취소 통보를 받고 집에 갔다. 고생한 동료들과 술 한잔 마실 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랬는데 상을 받으니 (감정이)갑자기 폭발하더라.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헤어졌다가 ‘온라인 극장’ 상영이 결정돼서 촬영을 위해 단 한 번 다시 모여서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무대에 선 것이다.”
-‘햄릿’은 역대 햄릿을 맡았던 명배우들과 비교되는 배역인 데다 ‘햄릿 공주’라서 더 큰 주목을 받았는데 부담이 얼마나 컸나.
“ ‘여성으로서 햄릿을 한다’는 생각보다 왜 제가 햄릿을 맡은 건지 궁금했다. ‘이봉련’이라는 배우가 햄릿이어야 하는 이유가 더 궁금했다. 어떤 걸 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많은 배우에 의해 오랜 시간 무대에 올라온 너무나 위대한 희곡인 만큼 그런 무대에 선다는 부담은 기본적으로 있었다. 그런데 연습해나가면서 공연팀은 저라는 사람이 풀어나간 햄릿을 존중해줬다. 이번 각색 본은 원작과 다르게 흘러가는 지점이 있다. 고뇌하는 햄릿에 그치지 않고 ‘복수자’로 가는 햄릿이었다. 그 부분에서 저를 많이 믿어줘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인가.
“생각과 다르면 의문을 가지거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각색 대본에 대해선 이미 동의가 됐다. 대신 연습하면서 제가 역할을 표현해나가는 방식이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사실 궁금하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가 아니라 대본에 맞게 표현했는지, 그렇게 보이는지 확인하는 걸 좋아한다.”
-드라마, 영화에는 그렇게 많이 출연했지만 연극 무대에 선 모습을 영상으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어떤 경험이었나.
“사흘 상영에서 칠천여명이 보았다고 한다. 극장보다 많은 관객이 본 것이다. ‘온라인 극장’용으로 촬영할 때도 단순히 기록물로 여겼다. 연극을 영상으로 만나는 건 저도 처음이었다. 그게 이 연극의 초연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다. 연극만이 가진 현장성이 빠진 공백을 영상이 메꿀 수는 없는데 생각지도 못한 계층이 공연을 보게 된다. 그들은 ‘온라인극장’을 공연으로 생각한다. 저라도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황장애인 친구가 온라인극장으로 ‘햄릿’을 보고 ‘너무나도 감사한 방식’이라고 하더라. 그런 생각까진 해본 적이 없었다. 또 대구에 사는 엄마 주변 어머님들이 연극을 본다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버스 타고 서울을 온다 해도 극장 예매도 어렵고…. 그런 분들이 이번에 ‘햄릿’을 본 거다. 엄마 카톡에 지인들이 ‘햄릿 공주님’ 너무 잘 봤다면서 엄마가 박수받았다. 물론 관객과 주고받는 에너지가 없는 온라인 극장은 분명 공연과 다르다. 또 영상 송출, 배포에 따른 여러 문제 등이 정비되어야 한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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