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예술과 정치는 적정한 거리를 둬야”
“어쨌든 예술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없겠지만 (적정한) 거리 두기를 하고 정치는 예술을 너무 종속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뭔 얘기를 하든 뭔 글을 쓰든 뭔 연극을 하든 좀 놔두는 게 좋다. 판단은 관객과 독자 등 (문화예술) 소비자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즘은 특히 정부 지원 없이는 (예술계가) 공연하거나 뭔 일을 하기 어려워 (예술인) 모두가 지원금에 목매는 실정이다. 그래서 제 소리도 못내고, 또 (정부) 지원금 받아서 하는 사업은 일단 (정부에) 비판적인 얘기를 하면 안 되잖나. (비판하면) 다음에 지원금 안 주니까. 예술인들이 스스로 자기 검열해가면서 종속되어 가는 거다.”
-국립극장장이나 장관할 당시 그런 부분도 고민했을 듯한테 나름 어떻게 대처했나.
“나는 절대 좌다 우다 (편가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특히 예술계에도 약간 그런 분류가 있는데, 일단 (지원 대상 선정 등을 위한) 심사위원이든 자문위원이든 가능한 고르게 구성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2000년에 국립극장장 하기 전까지 국립극장은 거의 관변 단체로 우파 예술가들의 성소였다. 나는 그 당시 약간 좌파로 분류돼 있던 사람인데, (국립극장장으로) 가보니 (좌·우파 예술인 간에) 적대적으로 갈려져 있더라. 그래서 나는 “국립극장은 좌파나 우파가 독식하는 기관이 아니고 국민을 위한 극장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 같이 가도록 해야 한다”고 기본운영 철학을 강조했다. 이후 문화부 장관이 돼서도 그랬다. 물론 그 당시에 좀 소외됐던 좌파예술계 쪽 사업에 신경썼지만 (그게)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했고, 또 훌륭한 예술가들인데 우파라고 소외시키지 않는 균형감을 갖고 일했다.
내가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을 할 때 그런 표현을 한 적 있다. 문화예술 행정과 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줄타는 광대’가 돼야 한다고. 예술이 전통과 현대, 좌파와 우파 양쪽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개의 큰 절벽에다 줄을 매놓고 줄을 타는 심정으로 하자고. 한 쪽에 치우치면 떨어져서 다 죽는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문재인정부에 대해 좀 비판적으로 본다. 너무 ‘우리 편 우리 편’(한 것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그렇게 편 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처럼 예술계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안을 윤석열정부한테 조언해준다면.
“지원사업 같은 데서 심사위원들, 특히 지원사업을 결정하는 심사위원 구성할 때 너무 한편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 그리고 선거 운동이나 정치권에 지나치게 깊이 들어와 있는 문화예술인들은 경계해야 한다. 선거에 지지했다고 도와줬다고 자리 (챙겨)주는 게 제일 문제다. 문재인정부 때도 ‘그거(자리 챙겨주는 것) 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 안 되더라. 막 선거캠프에 들어가서 일하는 문화예술인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중용되면 안 된다.
그게 정치권의 큰 문제거든. 자기들 도와주고 지지하고 열성적으로 일하니까 할 수 없이 그 사람들 위주로 (자리 챙겨줄) 생각을 할 수밖에 없잖나.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과연 문화예술계를 전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느냐. 문화예술계의 어떤 중요한 일을 맡았을 때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그런 점에서 인사라든가 이런 데서 문화예술인들이 볼 적에 너무 실망하지 않고, 선거에 도움준 걸 감안해도 ‘그래도 저 정도 인사면 괜찮다’라는 사람을 중용해야 한다. 하지만 대개 정치권 줄대고 다니는 사람은 그런 (자질과 능력, 신망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너무 내(권력) 주변, 정치권 주변 문화예술인 위주로 인사를 하기보다 널리 인재를 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 정도로 문화예술계가 심각한가.
“(예전에) 어느 국립극장장이 자체 내부 인사 하나를 못 하더라. 내가 국립극장장 할 때는 인사권을 문화관광부로부터 이양을 받았다. 그전에는 문화부 관료가 국립극장을 했다. 완전히 관료 조직이었는데, 김대중정부 들어 책임운영기관이란 제도를 만들었고, 내가 처음 민간 출신으로 국립극장 가게 됐다. 특히 문화예술이나 이런 쪽은 관료 대신 독립적으로 전문가가 와서 책임지고 운영한 뒤 평가를 받으라고 한 제도가 책임운영기관인데 내가 1호였다. 기관장이 책임지고 운영하려면 인사권과 예산권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당시 절대 내부 인사나 단원 오디션, 직원 채용하는 것에 대해 일체 압력을 받지 않았다. (위에서) 정말 전화 한 통화 없없다. 그전에는 단원들 심사하는 오디션만 봐도 국회 등에서 전화 빗발치고 (특정인 비방) 투서가 난무했다. 내가 취임 후 일주일 딱 버티고 (인사 청탁과 민원) 다 거부하니까 투서도 싹 없어졌다. 그때 말하자면 단장, 예술감독을 선임을 할 적에도 내가 원하는 사람을 1·2·3순위 추려 추천하면 장관이 1순위로 다 임명해줬다. 그런데 (퇴임 후) 보니까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국립극장장이 예술감독도 제대로 선임을 못 하더라. 의견들이 다르고 (청와대에서) 누구는 안 된다고 하고 그러니. (그것을 보고) ‘김대중·노무현정부 동안 벼르고 별렀던 우파 진영이 다시 (문화예술계를) 퇴행시키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뭔 일이 생기느냐. 예술계 자율성을 해친다. 국립극장장이다 하면 예술감독과 호흡이 맞아야 일을 잘 하게 되는데 예술감독이 극장장 제쳐놓고 권력자한테 딱 들어붙는 사람이 오면 극장장 무시하고 말도 안 듣게 된다. 따라서 거듭 새 정부에 바라는 건, 권력에 깊이 개입된 사람들보다는 순수하게 문화예술 쪽에서 실력과 전문성, 신망 있는 사람들을 문화예술 공공기관장에 써야 한다.”
-문화예술계 통합이 정말 중요한 과제라고 들린다.
“그렇다. 분열과 갈등이 너무 심각하니까. 그게 (예술계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큰 문제잖나. 모든 게 지금 내 편 네 편이잖아. 예술이 추구하는 게 뭐냐. 예컨대 진실과 아름다움, 선을 추구하는 거라고 한다면 그건 좌파든 우파든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 아닌가. 예술의 가치라는 건 이념하고 관계없다. 다만 그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대와 사회를 보는 눈이 약간 다를 뿐이지. 그리고 새가 두 날개로 날듯이 (좌파와 우파가) 서로 공존해야 문화 예술도 번영한다. 문화 예술이란 정원에는 수많은 꽃들이, 색깔과 향기가 다른 꽃들이 함께 피어나야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지는 것 아니냐.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정원은 지금 빨간색 꽃 가진 놈은 파란색 꽃을 그냥 확 쳐버리고 (그 반대도 있고), 서로 간에 응어리진 게 너무 많다. 새 정부에서 정말 고민 많이 해서 (분열을) 잘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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