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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으름장’에 라면값 내렸다지만…분식집은 ‘요지부동’ 왜? [김기자의 현장+]

입력 : 2023-07-04 11:59:35 수정 : 2023-07-04 13: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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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압박’ 농심·삼양식품·오뚜기·팔도 라면 ‘빅4’ 13년만에 가격 내려
인건비·가스·전기 요금 등은 올라
분식집, 대부분 일반 소비자와 다른 경로로 (봉지)라면 공급받아
일반 마트서 가격은 그대 받기도
서울 용산구 한 분식점에서 주문한 라면.

 

“라면값 어떻게 내려요. 직장인부터 학생들까지 편의점만 찾는데….손님도 없고, 물가는 오르고 죽을 지경입니다”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던 지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분식집.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분식집 내부에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서울 용산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56)모씨는 라면값을 내릴 계획이 있는지 묻자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는 “(봉지)라면이 50~500원 내린다고 사정은 달리 자지 않는다”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 라면 값을 떨어뜨린다고 한들, 눈뜨기 무섭게 오르는 재룟값을 생각하면 라면값 내릴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메뉴판에는 4000~5500원까지 라면값이 다양했다. 인근 다른 분식점 마찬가지듯 3500~5000원 안팎에 변화는 없었다. 가격 인하 계획이 발표된 뒤에도 용산구 분식집의 기본 라면 가격은 대부분 4000원 안팎으로 변화가 없었다. 치즈나 해물·떡·참치를 추가할 때마다 500원씩 더 받고 해물라면은 5500원까지 받고 있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대표 서민 식품’ 라면 가격 인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빅4’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라면 업체를 압박하면서 지난 1일부터 인하됐다.

 

농심은 대표 제품인 신라면 봉지면의 가격을 4.5% 내려 소매점 기준 신라면은 1000원에서 950원으로 인하됐다. 새우깡 출고가도 6.9% 내려 1500원에서 1400원으로 조정된다. 오뚜기도 라면류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하했다.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으로 참깨라면 4680원(4개 포장)에서 4480원으로 4.3%, 진짬뽕 6480원(4개 포장)에서 6180원으로 4.6% 인하된다. 삼양식품 역시 같은날부터 삼양라면을 비롯한 12개 대표 제품의 가격을 평균 4.7% 인하 했으며, 팔도도 11개 제품을 평균 5.1% 인하 동참했다.

 

서울 용산구 한 분식집. 라면 가격은 4500원에서 5500원 선이다.

 

하지만, 분식집 라면값은 변화가 없었다. (봉지)라면 가격 인하 폭이 50~500원으로 미미한 데다 분식집에 (봉지)라면을 공급하는 중간 유통업체들과 마트에서 출고가를 아직 조정하지 않은 탓도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격을 올릴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인건비·가스·전기 요금 등 라면을 끓여 파는 데 다른 비용이 여전히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식집 생산비용 증감을 가늠할 수 있는 ‘분식 및 기타 간이음식점’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 5월 155.46(2015=100)으로 전월 대비 0.7%,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9.7% 상승했다.

 

분식집들은 대부분 일반 소비자와 다른 경로로 (봉지)라면을 공급받아 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숙대입구역 인근 한 분식집 주인은 “정부에서는 내렸다고 하는데 마트 가보면 가격은 그대로다”라며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면값이 인하한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면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시름만 깊어져 가고 있다. 생산비용은 오히려 상승하는 상황에서 가격을 내리길 바라는 손님들 눈치도 속앓이만 하는 실정이다.

 

서울 중구 한 분식집 주인 김(52)모씨는 “가볍게 드시고 가시던 분들도 뜸해졌다”며 “한 차례 가격을 올렸더니 단골손님까지도 줄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일부 분식집을 찾는 손님도 가격 인하 소식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인하 폭이 낮아 체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숙대입구역 입구에서 만난 대학생 이(25)모씨는 “나름 정부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시장 경제를 무시하고 업체만 압박하는 모습이 좋지 않아 보인다”며 “정부 생색 내기용 홍보가 너무 강한 느낌이 든다”고 비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직장인 안(34)모씨 “라면값 잡는다고 경제가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라며 “자영업자들의 전반적인 재룟값 또는 가스·전기 요금이 오른 이상 라면값이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 가격 인하 후 제빵업계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며 “밀가루 관련 업체들의 눈치 싸움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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