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혜택 못 받아… 리더십 부재 지적
佛 르펜, ‘EU 예산 유용 혐의’로 유죄
피선거권 박탈… 2027년 출마 불투명
머스크 “급진 좌파, 법제도 악용 옥좨”
유럽 정계를 이끄는 두 여성 정치인이 동시에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극우 성향으로 평가되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프랑스 대권 유력주자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이 당사자다.

멜로니 총리는 미국과 유럽의 가교 역할을 하며 유럽 내 영향력 확대를 도모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가 바탕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유일한 유럽 정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도 친분이 깊어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앞에서 멜로니 총리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미국이 유럽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노선을 걸으면서 양측의 대서양 동맹이 급속도로 악화돼 두 진영 간 줄타기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3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며 멜로니 총리가 중간에 끼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관세 부과 대상에서 이탈리아를 예외로 인정받기 위해 백악관 방문을 타진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미국, 유럽 어느 쪽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유지하고 있는 멜로니 총리의 의도적인 침묵은 리더십 부재로 비치는 상황이다.

위상 강화의 발판으로 여겼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이 특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탈리아 국내 정치에서도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연립정부 내 강경 우파 정당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공식 외교라인을 건너뛰고 J D 밴스 미국 부통령과 접촉하는 등 독자적 행보를 보여 논란을 빚었다.
프랑스 극우의 ‘대모’로도 꼽히는 르펜 의원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대선 가도가 일단 막혔다. 파리 형사법원은 이날 르펜 의원이 유럽연합(EU) 예산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인정해 징역 4년(전자팔찌 착용상태로 2년간 가택구금), 벌금 10만유로(약 1억5900만원) 판결을 내렸다. 특히 주목되는 건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한다며 효력을 즉시 적용했다는 점이다. 1심 판결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항소심에서도 이런 판단이 유지되면 2027년 예정된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르펜 의원은 TV에 출연해 “대선 출마를 막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다”며 “민주주의와 국가에 어두운 날”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르펜 의원은 2017년 대선 결선 투표에서 33.9%, 2022년 41.6%의 표를 얻었고 50% 지지 확보를 눈앞에 두었다는 평가를 받는 유력주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르펜 의원의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매우 큰 문제”라며 “5년간 출마가 금지됐는데 그녀는 유력 후보”라고 지적했다. 머스크 CEO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급진 좌파는 민주적 투표를 통해 승리할 수 없을 때 법제도를 악용해 상대방을 감옥에 가둔다”고 주장했다.
멜로니 총리도 르펜 의원의 판결에 대해 “민주주의에 슬픈 날”이라며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주요 정당의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아 수백만명 시민의 대표권을 박탈하는 판결에 기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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