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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15> 조용미 ‘자미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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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9-24 00:37:10 수정 : 2009-09-24 00: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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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688미터 은하철도 시발역
‘자미원’서 무한 여행을 시작하다
‘자미원’(紫味院)은 강원 정선군 남면에 있는 태백선의 간이역 이름이다. ‘자미원’(紫微垣)은 큰곰자리를 중심으로 170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 이름이다. 한자와 의미는 다르지만 이름은 같다. 시인은 눈이 펄펄 내리는 날 기차를 타고 우연히 자미원 역을 지나다가 한참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천문과 우주에 관심이 쏠려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옛 천문서를 뒤적이던 터였는데 역 이름이 그가 공부하던 별자리 ‘자미원’이었으니, 놀랄 법도 하다. 풍경을 해독하기 위해 틈만 나면 길을 나서던 시인이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면 어떤 풍경은 그네의 잠을 방해하고 의식을 들쑤시면서 빨리 시로 옮겨줄 것을 강요하는데, 그때마다 시인은 언어를 다스리는 제왕이 되어 잠시 진정하라고 그 녀석들을 다독이는데, ‘자미원’은 그 여행에선 당연히 최우선으로 조각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조용미 시인이 정선 역에서 자미원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네는 “우리를 번민케 하는 것은 이 지상의 아름다움, 우리를 거듭 번민케 하는 것은 오직 이 지상에서의 아름다움…”이라고 산문에 썼는데 “아름다움이란 사물의 편도 사람의 편도 아닌, 슬픔의 영역”이라고 그날 희미하게 말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 오늘 하루 이 시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저 바위가 서 있는 것과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를 태운 기차는 청령포 영월 탄부 연하 예미를 지나/ 자미원으로 간다/ 그 큰 별에 다다라서도 성에 차지 않는지/ 무한의 너머를 향해 증산 사북 고한 추전으로 또 달린다/ 명왕성 너머에까지 가려 한다”(‘자미원 간다’ 부분)

정선역을 향해 차를 몰았다. 청량리에서 출발해 제천을 거쳐 태백선으로 갈아타는 기차여행이 제격이겠으나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열차인 데다 일행이 합세해 그건 여의치 않았다. 정선역으로 가서, 그곳에서 오후 5시45분 아우라지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자미원역에서 내리는 방안을 차선으로 선택했다. 조용미(47) 시인은 그네가 1996년 첫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펴냈을 때 문단 술자리에서 잠시 스쳤을 뿐, 이후 그와 가까이서 대화를 나눈 건 이번 기행이 처음이었다. 명랑하고 적극적인 여인이라는 인상을 오래 지니고 있었는데, 10여년 만에 만난 그네는 검고 깊었다. 목소리는 얇고 희미했으며 얼굴에는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자의 체념 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정선역까지 달려오는 동안 간헐적으로 물었고, 그네는 선택적으로 답변했다.

“검은 색은 냄새가 난다/ 달빛 흐르는 비릿한 어둠의 냄새/ 먹을 천천히 빨아들이는 화선지의 냄새/ 최후의 최후인 재의 냄새,/ 검은빛은 따스하다/ 삶과 죽음이 마주 보고 있는 검은빛의 유전자에는 잠과 물이 들어 있다/ 부드럽고 따스한 검은빛은/ 눈이 부시다”(‘黑’ 부분)

◇자미원 인근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영월 청령포에 들렀다. 조용미 시인이 좋아하는 소나무들이 배경에서 비를 맞고 있다.
정선역에 이르러 일행은 역전에 차를 세우고 식당을 찾았다. 화려하진 않으나 구미를 당기는 간판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우리는 ‘메밀콧등치기’가 간판에 적힌 허름한 식당을 선택했다.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넣은 김치찌개와 감자부침, 콧등치기를 주문했더니 올 환갑이라는 주인 아낙이 ‘애들 아버지’가 키웠다는 찰옥수수까지 덤으로 쪄서 내왔다. 일행과 자미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시인과 함께 기차를 타기 위해 정선역으로 갔다. 시인은 늘 혼자 여행을 떠났는데, 자미원에 도착하면 일행이 차를 가지고 마중나올 것을 생각하니 든든하다고 했다.

“저물녘, 집으로 돌아오는 당신을/ 멀리까지 마중나가보고 싶습니다/ 어스름이 깔린/ 집 근처의 나무들이 눅눅해지는 그곳으로// 따스한 외투와 목도리를 두르고/ 차가워질 여윈 손은 주머니에 넣고서/ 조금 멀리, 당신이 오고 있을/ 푸른빛이 짙어서 깊어가는 어둑한 그 길을 따라// 그런 날이 오겠지요/ 아마 오겠지요 그런 날을 기다린 줄도 모르게// 햇살이 커튼 뒤에 불을 켜듯 화안하게/ 푸른 연꽃을 피워 올렸다 꺼뜨리는 저녁 무렵/ 하루가 열렸다 닫히고 또 열리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어쩌면 당신을 마중 나가는 일도 깜빡할 날들이/ 아마 오겠지요/ 그런 날들을 기다린 줄도 모르게// 푸른 연꽃이 커튼 자락에/ 밤낮으로/ 세상에 없는 그 꽃들을 수미단에서처럼/ 크고 화안하게 피워 올리겠지요/ 햇빛이 그 일을 도와주겠지요// 나는, 햇빛 따라가겠습니다”(‘햇빛 따라가다’)

정선역 플랫폼에서 열차가 도착하기 전 사진을 찍었다. 서서히 드러나는 가을 산색과 길게 대기하고 있는 화물차를 배경으로 검은 옷의 시인이 파인더 너머로 떠오른다. 역 끄트머리 철로변 신호등 붉은빛이 그네의 머리 위에 떠 있다. 열차 안은 서너 사람만 띄엄띄엄 앉아 있을 뿐 한가하다.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그네는 “오늘은 드물게 솔직한 날인데, 그렇다고 평소에 솔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인데 오늘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네는 끊임없이 풍경을 찾아 떠도는 스타일인데, 그 역마(驛馬) 기질은 다분히 기질적인 측면도 있겠으나 젊은 시절의 아픈 체험도 한몫을 거들었다고 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네는 애초에 전라도 쪽과는 연고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네가 막 데뷔했을 무렵 고정희(1948-1991) 시인이 그를 굉장히 아껴서 서로 살가운 사이였는데 지리산에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그네의 병고 때문에 4월 일정이 6월로 늦춰졌고, 결국 그네가 빠진 채 떠났다가 계곡에서 변을 당해 고정희 시인만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때의 상처는 7년이 지나도록 극복하지 못했고, 이후 짬짬이 고정희의 고향인 전남 해남 땅으로 갔고, 해남은 그네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때 그네가 고정희 시인과 함께 떠나지 못했던 건 지금까지 천형처럼 안고 사는 허리디스크 때문이었다. 매화 필 무렵이면 특히 도지다가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무섭게 다가와 그네를 눕혀놓는다.

“몸이 견딜 만하면 아팠던 때를/ 잊어버린다 내 몸이 늘 아프고자 한다는 걸,/ 누워 있으면 서 있을 때보다 세상이 더/ 잘 보이는 이유를 또 잊어버린다/ 통증이 살며시 등뒤로 와 나를 껴안는다/ 몸을 빠져나간 소리들 갈데 없이 떠도는/ 꽃나무 아래”(‘봄날 나의 침묵은’ 부분)

차창 밖으로 옥수수밭과 그 너머 외딴집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이 지나간다. 해거름 무렵이어서 밖은 바야흐로 어두워지는데 해발 600m가 넘는 철길 아래 산맥 사이로 길들이 흘러간다. 시인은 풍경이 너무 좋아 이야기를 나누기가 아깝다고 탄식했다. 그네는 여행지에서 만난 특별한 풍경은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고 했다. 여행지에서 시를 쓰는 경우는 없고 돌아온 뒤 그 풍경이 들쑤셔 잠을 못 이루게 할 때 시가 나온다고 했다. 자연에서도 정신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데, 자연이 곧 정신인, 육체와 정신이 합일되는 듯한 풍경을 만날 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아, 이 세상에 살아서 존재하는구나, 느낀다고 했다. 그네는 가끔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아 걸어가다가도 아, 아, 소리를 내보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네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뒤 탄식처럼 “이런 풍경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지 않으냐”고 대답이 필요없는 질문을 했다. 그네는 “아름다움은 사물의 편도 사람의 편도 아닌, 슬픔의 영역”이라며 “어둠을 모르는 자는 진실을 모른다는 말에 진심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그네에게 어둠이란 오랫동안 등에 솟은 날개처럼 지니고 다니는 통증 같은 것일까.

“물고기의 등에 산이 솟아올랐다/ 등에서 산이 솟아오른 물고기는 탱화 속에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의 물고기는 날개를 달고 있었다// 탱화 속의 물고기를 나는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커다란 산을 지고 물 속을 떠다녔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아도 등에 돋아난 죄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魚飛山에 가면 물고기들이 날아다녔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산에 가는 것을 미루다 물고기의 등을 뚫고 나온 사리를 본다 물고기는 뼈를 삭여 제 몸 밖으로 산 하나를 밀어내었다”(‘어비산魚飛山’ 부분)

여행을 다녀온 뒤 밥도 못 먹고 고열에 시달리며 일주일 내내 아프다가 ‘어비산’을 쓰고 나서야 살아났다고 했다. 대체 누구를 위해 그 고통을 감내하며 시를 쓰느냐고 물었더니 그네는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반문했다. 사는 것과 쓰는 것이 같은 것이니, 더 말할 게 없다. 그네는 “등에 산이 솟아나는 물고기,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게 내 운명”이라고 희미하게 말했다. 열차는 잠시 후 자미원, 자미원 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남성 차장의 차분한 안내방송이 객차에 흘러나오자 시인이 모처럼 가벼운 성음으로 농담을 했다. “저는 안 내릴래요, 혼자 가세요.” 어디로 가겠다는 건가. 북두칠성과 자미원의 하늘? 지구라는 별에 불시착한 외계인들만 아는 자미원을 향해 떠나는 곳, 그 은하철도 시발역 해발 688m 자미원 역?

“검은 탄광지대에 펼쳐진 하늘,/ 태백선을 타면 원상결 같은 작자와 시대 미상의 천문서를 탐하지 않아도/ 紫微垣에 닿을 수 있다/ 탄광 속에는 백일흔 개의 별이 깊숙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 별에 이르는 길은 송학 연당 청령포 영월 예미……//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 북두칠성과 자미원의 운행을 짚어보는 것은/ 저 엄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과 새털구름이 지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자미원 간다’ 부분)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조용미 연보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1990년 ‘한길문학’에 ‘청어는 가시가 많아’를 발표하여 등단
●2005년 제1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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