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펜션, 문화공간으로
집필과 습작 넘어선 휴식공간 역할까지
문학 명소 되길 기대
봄이 오고 있다. 매년 오는 봄이지만 참 힘들게 다시 맞는 느낌이다. 아픈 죽음들을 딛고 오는 봄이다. 봄 타령이 아직 성급한가. 세월은 어김없다. 올해도 먼저 피어난 복수초 사진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제 몸의 열기로 쌓인 눈을 녹이고 얼굴을 내밀어 ‘얼음새꽃’으로도 불리는 복수초. 황금 술잔 형상으로 환하게 피어난다. 복수에 한 맺힌 풀 아니라 복(福)과 수(壽)를 가져다주는 행운의 꽃, 사랑을 알리기 위해 지하에서 올라온다는 미소년 아도니스의 환생이다.

복수초만으로 봄이 왔다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매화가 피어나야 하고 뒤이어 산수유 만개하고 진달래 개나리가 산야를 밝혀야 비로소 돌이킬 수 없는 봄이다. 적어도 화려하게 드러난 봄의 상징은 그런 꽃들이다. 그래도 복수초처럼 외진 곳에서 겨우 피어나는 꽃들에게 봄은 이미 시작됐다. 복수초와 더불어 남쪽에는 변산바람꽃도 피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리산에 살면서 근년에는 야생화 사진에 푹 빠져 있는 이원규 시인이 엊그제 여수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서 ‘변산 아씨’를 만나고 왔다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야생화 사진을 찍는 이들은 자신이 발견한 꽃의 장소를 발설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와서 찍는 것도 원치 않거니와 소문이 나면 귀한 꽃들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난해 다녀온 그곳을 조용히 홀로 방문해 다섯 송이 정도 눈 속에서 고개를 내민 모습을 찍었다고 자랑했다. 멀리 베트남에 가 있는 사진 찍는 시인 선배가 “변산 아씨 물 길러 나왔느냐”고 안부를 물어 “여수 아씨가 햇살 한 바가지 마시러 나왔다”고 소식을 전했단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토끼 귀 같은 하얀 잎 다섯 장을 활짝 펴고 가운데 암술과 노란 꽃을 품고 있는 변산바람꽃은 흔치 않은 야생화다. 이른 봄 남해안과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피어나는 한국 특산종이다. 1993년 전북대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발표하면서 학술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의 지명을 그대로 채택했다.

남쪽인 여수에 비해 변산은 아직 기온이 낮아 꽃이 피지 않았지만 사시사철 피어 있는 ‘변산바람꽃’도 있다. 줄포만을 끼고 변산반도 끄트머리 해안에 그 꽃은 피어 있다. 갯벌과 아늑하게 휘어지는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서 있는 펜션의 이름이 바로 변산바람꽃인데, 해안에서 올려다보는 이 건물의 모양도 꽃처럼 아름답다. 부안에서 치과를 오래 운영한 토박이 의사 서융(54)씨가 주인이다. 지역민들과 ‘부안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들어 부안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해 반연간지를 출간했고 소외된 변방의 문화를 살려보려는 뜻을 가진 그가 ‘변산바람꽃’을 작가들의 공간으로 내놓았다.

전주에 사는 안도현 시인을 만나 ‘변산바람꽃’을 단순한 숙박 공간으로만 활용하기는 아깝다고 말하자 안 시인이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쉽게 의기가 투합했다. 지난해 9월부터 레지던스 사업을 준비해 최근 5개월 동안 시인과 소설가와 습작생이 임시 입주하여 시험 운영을 거쳤다. 문인창작실 3실, 습작생 창작실 2실에 올해 30여명이 입주할 예정이고 5월에는 외국작가도 들인다. 식당 도서관 멀티미디어 시설을 구비하고 매일 식사도 제공한다.

어제(13일)는 이 공간의 대표 서융씨와 안도현 운영위원장, 김종규 부안 군수를 비롯해 백가흠 이기호 이원 김민정 정용준 정영효 등 시인 소설가, 습작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적인 레지던스 공간 개소식을 가졌다. 대표적인 문인 레지던스 공간인 토지문화관이나 연희문학창작촌과 이곳이 다른 점은 습작생까지 받고 단순한 집필을 넘어선 휴식의 공간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습작생들이 실무를 분담하면서 작가들과 더불어 문학의 길에 도움을 받는 상생 형식이다.

멸종 위기의 야생화들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경사면에 핀다. 벌 나비들이 찾기 쉽지 않아 갈수록 줄어드는 숙명이다. 문인들이 깃들고 그들과 더불어 문향을 나누게 되면 변산바람꽃은 더 이상 외진 곳에서 바람에 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철 아름다운 줄포만을 내려다보며 피어 있을 새로운 한국 문학의 명소에 대한 기대가 크다. 바야흐로 다시 봄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