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재일교포 민간단체가 크게 두 개 있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며 한국과 교류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과 연계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다. 한때는 조총련의 세력이 더 컸으나 북한의 급속한 경제 침체와 한국의 발전으로 탈퇴자가 늘면서 지금은 민단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민단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국적자 55만명, 일본 국적 취득 동포 34만명 등 공식 통계로 90만명의 재일동포가 있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동포가 3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조총련 조직원은 5만명 미만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9월 SBS에서 방영된 일본 조선학교 프로그램인 ‘나는 가요 - 도쿄 제2학교의 여름’의 한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
한국과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세상이 됐는데도 여전히 조총련 조직이 유지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조선학교’가 꼽힌다. 조선학교 고급학교(고교) 교감을 지낸 유태성(66)씨는 “졸업생이 계속 배출되고 명절, 결혼식, 장례식 등을 통해 선·후배 간 교류가 계속되면서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다”며 “조총련 조직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알면서도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조선학교에서 한국 국적 학생들도 북한 국적 학생들과 똑같이 북한식 역사 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모든 조선학교는 조총련이 운영하는 출판사인 학우서방에서 발행한 친북 성향의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6·25 북침설, 김일성 우상화 등을 주입시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유씨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1990년대 초 김일성 원수 혁명역사, 김정일 혁명역사 과목이 있었는데 최근 조선역사로 제목이 바뀌었으나 내용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조선학교는 2003년 교과서를 개편했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학교 사진 |
조선학교가 처음부터 북한과 조총련의 지배를 받은 것은 아니다. 광복 후 일본에 남은 재일교포들이 상호 부조, 귀국자 지원, 자녀의 민족교육 등을 목적으로 이념을 초월해 조직한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이 ‘국어강습소’(민족학교)를 일본 전역에 600여개 만들었다. 그러다 조련 내 공산주의 이념에 심취한 좌파 세력이 상대적으로 강해지자 자유민주주의를 따르는 우파 세력이 분리돼 나와 1946년 민단을 결성했다. 이를 계기로 민족교육의 운영이 좌파 쪽으로 기울었다.
조총련 도쿄 지역 생활정보지 ‘하나’ 최신호에 실린 사진으로, 지난 5월31일 도쿄조선중고급학교에서 열린 조총련 결성 60주년 기념행사 모습 |
그러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 국적과 함께 영주권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한국 국적을 선택하는 교포가 많아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면서 북한과 조총련의 이미지가 매우 나빠져 북한 국적을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사람도 늘었다. 북한 국적자 감소로 운영이 어려워진 조선학교는 결국 한국 국적자에게도 입학을 허용하게 됐다.
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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