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중인·하우 사이의 ‘신공항’ 리더십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입력 : 2016-06-23 21:39:09 수정 : 2016-06-23 21:39:0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0년 만에 어렵게 나온
‘김해공항 확장’ 결정은
최악 피한 합리적 결론
그렇다고 사과도 없이
넘어가려 해서는 안 돼
공자에 따르면 인간은 세 등급으로 나뉜다. 하나는 상지(上智)다. 특별히 똑똑한 축이다. 다른 하나는 하우(下愚)다. 특별히 어리석은 축이다. 이 둘에 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나머지 하나, 즉 중인(中人)에 속한다. 공자는 배움을 중시했다. 당연히 상지·하우보다 중인에 관심이 많았다. 배우고, 안 배우고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중인인 까닭이다. 중인이 다 같지는 않다. 두 부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배워서 아는 자(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다. 다른 하나는 ‘어려움에 부딪혀 배우는 자(곤이지지자·困而知之者)’다. 전자는 간접경험만으로 분별력을 얻고, 후자는 몸으로 겪어야 비로소 뭔가를 깨치는 부류다.

왜 공자 타령인가. 엊그제 ‘김해공항 확장’으로 일단락된 신공항 문제를 요점 정리하려면 공자 잣대가 안성맞춤이어서다. 신공항 논란, 참 오래됐다. 처음 불거진 것이 1990년이니 사반세기가 흘러갔다. 2006년 신공항 검토 지시가 나온 것부터만 쳐도 10년을 돌고 돌았다. 불량 리더십과 무관치 않은 시간·국력 소모였다.

이승현 논설위원
가덕도(부산)와 밀양(대구·경북) 대결구도로 짜였던 신공항 드라마는 등장인물이 많다. 조연과 단역, 행인 1·2 따위가 즐비하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좋은 예다. 그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화로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는 건너뛸 수밖에 없다. 지면은 비좁고 시간은 아까우니까. 주연급만 보자. 바로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두 주연의 행보는 얼추 비슷하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신공항 건설 공약을 내걸었다가 4년 후인 11년에 백지화했다. 경제성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실은 영남권이 두 동강 날 위기였기 때문이다. 소지역주의 발호가 그렇게 무서웠다. 박 대통령이 택한 길도 판박이다. 18대 대선을 앞둔 12년에 공약을 했고 엊그제 원점 회귀로 틀었다. 공교롭게도 또 4년 만이다.

두 주연은 공자의 세 등급 중 어디에 속할까. 상지는 꿈꾸기도 어렵다. 기껏해야 중인이다. 중인 중에서도 학이지지자와는 거리가 멀다. 이 전 대통령은 승부가 뻔했던 17대 대선에서 극독성 공약을 뿌려 곤경을 자초한 허물이 있다. 어찌 학이지지자를 넘보겠나. 박 대통령은 한 술 더 떴다. 전임자 곤경을 지켜봤으면서도, 나아가 그 곤경을 가중시켰으면서도 똑같은 길로 달려가는 우를 범했다. 꺼진 불씨를 되살린 책임도 크다. 뻔히 보고도 못 배운 결과였다. 둘 다 중인 중 곤이지지자에 그치기 십상이다.

물론 두 주연은 할 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만 해도 그렇다. 청와대는 공약 파기가 아니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백지화와는 다른 ‘김해 신공항’이란 주장이다. 박 대통령이 그제 직접 그렇게 못박았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국민에게 통할지 의문이다. 또 통하더라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 에너지를 낭비한 원죄마저 지울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5년 전의 전임자와는 달리 순순히 사과에 나설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괜한 걱정을 더한다. 등급 판정도 헷갈리게 하고….

공자가 말한 상지는 무엇이고 하우는 무엇인가. 논어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라는 표현이 나온다. 상지가 그렇다. 배울 필요가 없다. 하우는? ‘어려움에 부딪혀서도 배우지 않는 자(곤이불학자·困而不學者)다. 이 역시 배울 필요가 없는 등급이다.

국책사업 측면에서, 박 대통령은 최악을 피했다. 전현직 대통령이 합리적 결론에 도달한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개인도, 국가도 하우 수준을 면했다. 신공항 드라마는 훗날 의외로 높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발단·전개는 꼴불견이었지만 주연의 분발로 깔끔한 마무리를 맞았다는. 하지만 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치권 안팎과 지역사회에는 하우 수준의 아우성이 넘쳐난다. 신공항 망령을 되살려내겠다고 벼르는 이들마저 없지 않다. 민심 향방도 낙관 불허다.

청와대는 위중한 현실 속에서도 사과도 없이 위약이 아니라고 우긴다. 담 넘는 구렁이를 흉내내는 격이다. 답답하다. 하우 수준의 아우성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인가. 진흙탕 싸움을 원하는 것인가. 하우 수준의 뒤처리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곤이불학자’보다는 그래도 ‘곤이지지자’가 낫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