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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 ‘피의자 대통령’ … 청와대 측 공격받는 처지 / 법앞에 만인평등 원칙 지켜 / 단호하고 주저 없이 달려가야 검찰이 독하게 수사한 것 같다. 지난 20일 검찰이 최순실씨 등을 구속기소하면서 법원에 낸 공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소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33쪽 분량 중 박 대통령 혐의와 관련된 부분이 26쪽이나 된다. 최씨,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공모해 미르·K스포츠재단과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포스코, KT, 그랜드코리아레저와 관련해 직권을 남용하고 강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도 공범관계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대통령을 기소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하야할 수가 없겠다”고 덧붙였다. 헌법 84조에 따라 박 대통령이 재임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지만 하야할 경우 보호막이 걷혀 곧바로 체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이 검찰 대면조사에 불응하겠다면서 강공 모드로 돌아선 이유로 보인다. 차라리 탄핵이 되더라도 시간을 갖고 국면 전환을 노리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박희준 논설위원
의혹이 봇물 터지듯 제기된 두 달 전과 180도 달라진 검찰 모습이니 놀랍다. 언론인 감각으로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최씨 관련 의혹 제기에 수사를 주저주저하던 검찰이다. 민간인에게 적용할 혐의가 마땅찮아 법리적인 검토 등이 필요했다고 해명하나 군색하다. 대통령에 대해서는 헌법 84조를 들어 수사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검찰이 지금은 오히려 청와대 측으로부터 ‘사상누각’ ‘인신공격’ 등의 거친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되었으니….

권력을 향한 더듬이를 가동한 것일까.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10월25일)에 나서자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졌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도 그가 경질되자 시작됐다. 이달 5일 시작된 주말 촛불집회의 위세에 깜짝 놀라서는 아닐 것이다. 검찰에 없던 결기가 어느 순간 생겨난 것도 아닐 터. 살아있는 권력에 한없이 약하고 죽은 권력에 가차 없이 칼을 들이댄 검찰 습성의 발현일 뿐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검찰이 정말 독하게 한 것 맞느냐고 의문을 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에게 직권남용보다 형량이 더 무거운 제3자뇌물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돈을 낸 일부 기업의 경우 사면 등의 현안이 있었으니 그리 볼 만도 하다. 검찰이 제3자뇌물을 애써 외면한 것 같지는 않다. 공소장에 삼성그룹 관련 부분을 넣지 않은 걸 보면 그렇다. 다만 검찰이 직접 뇌물 혐의까지 밝혀내려 할지, 아니면 부담을 특별검사팀에 넘길지가 관건이었을 뿐이다.

검찰은 의지야 어떠했든 간에 ‘피의자 대통령’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상황을 연출했다.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야권이 탄핵 절차에 들어가고 여권은 쪼개지고 있다. 어제는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전해졌다. 수사결과에 따른 당연한 순서이다. 도도한 역사 흐름을 어찌 해볼 도리 없는 현실과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도리 사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검찰이 걸어갈 길도 훤히 드러나 있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성난 민심에 보여주기 수사를 해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이상 조사는 필요하다. “(정 전 비서관의 녹음파일을) 단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은 횃불이 될 것”이라는 식의 말싸움은 비겁하다. 대통령 강제소환이 가능한지를 놓고 법조계 시각이 갈리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검찰은 최종 판단 기관이 아닌 만큼 가능한 법적 수단을 강구해 봐야 한다.

김수남 검찰총장의 고민도 김 장관이나 최 수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수사를 현명하게 매듭지을 책임이 있다. 당장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법의 이념에만 충실해야 한다. 검찰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길이다. 현직 대통령을 입건한 검찰, 어느 미래 권력도 감히 조자룡 헌 칼 쓰듯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뒤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일 것이다. 단호하고 명확한 길을 한 번 주저함도 없이 달려가는 검찰을 꿈꿔본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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