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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34> 일하는 것보다 전업주부 생활이 더 어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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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6 14:00:00 수정 : 2016-11-26 10: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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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한테는 엄마가 옆에 있는 게 가장 좋은데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

내 주변에는 ‘여자도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주 희소했지만 여전히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긴 했다. “전혀 없어요. 저는 60대에도 일할 거예요.” 내 대답은 완고했다.

이유를 물으면 지금 당장은 엄마 품에서 자라는 게 아이에게 좋지만, 성장해서 결혼할 때까지의 긴 생애주기를 놓고 보면 자기만의 일이 있어 보다 쉽게 아이와의 거리 설정을 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도 당장은 월급 대부분을 베이비시터에게 쓰면서 남는 게 없더라도, 아이가 크는 동안 버티고 진급하면 아이가 양육보다 지원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단단한 맞벌이 가정을 일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발달 과정의 일환으로 떼, 보챔, 짜증이 늘어가는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것보다 퇴근 후 온 마음을 다해 돌볼 때가 관계 형성에 더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답했다.
좁아진 세계, 단로조운 생활, 혼자 있다는 고립감 속에서 스트레스는 커다란 벽이 된다.
그런데 내가 일을 지속하는 진짜 속내는 따로 있었다. 지난해 육아휴직 기간 나는 처음으로 전업주부 생활을 했다. 뜻밖에도 그 생활은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랬다. 개인의 경험을 확대해석하는 것일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애 보는 게 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여성들이 많은 걸 보면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휴직 전만 해도 내게는 직장에 매이지 않는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신랑에게 몇번 “나 회사 그만두면 안 돼?”라며 응석을 부렸다. 김훈 작가의 책 제목인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문장과 같은 심정이었다. 밥벌이란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애정이 있는 사람, 서로에게 호불호가 없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 속에서 먹고사는 일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사람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돈 벌어오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라고 말하는 외벌이 가장의 생색에는 이런 스트레스에 익숙해져야 하는 고단함이 깔려 있다.

휴직 전에는 사랑하는 아기랑 남편이랑,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소수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전업주부의 삶이 안락하게 보였다. 육아휴직을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먹이고 입히는 대로 따라주는 생명인 아기와 달리 어른인 남편과 가족들이 좁아진 내 세계에서 너무 커다란 존재가 되면서 갈등이 일어났다. 남편의 늦은 귀가로 인한 스트레스가 함께 일하는 상황에서 1이었다면 그때는 10이었다. 나의 하루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남편의 퇴근이었다. 말 못하는 아기의 수발을 들며 반복된 생활을 할 때 내가 이러저러한 성격과 성향을 지닌 나일 수 있는 시간은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뿐이었다. “나 회사 그만두고 싶어”라고 토로할 정도로 직장 생활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런 남편이 연이어 늦게 들어오면 화가 났다. 육아에 매여 기본욕구조차 풀지 못하다 보니 섭섭함, 외로움의 파도가 쉽게 마음을 휘저었다.

내 세계는 외부인의 현관 벨소리를 반가워할 정도로 작아졌다. 지난해 지역 엄마들 커뮤니티에 가입해 아이 엄마들과 물물교환을 많이 했는데, 정말 그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라도 만남을 시도했다.

집에만 있다보니 작은 일을 곱씹어 생각하면서 내면의 울화를 키우는 일도 많았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가 종류도 다양하고 무게가 클 때가 많지만, 해소와 배출이 잘 안 된다는 점에서 전업주부로서의 스트레스가 더 감당하기 어려웠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억눌린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고, 일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 상황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잠깐이라도 마음을 비우는 ‘거리 두기’를 하면 부글거림의 정점은 지나가게 된다. 그러나 집에만 있을 때는 스트레스 상황이 계속 뇌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또 매일매일 해도 별로 표나지 않는 집안일에서 나의 ‘역할’이 아닌 ‘나’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자존감이 흔들렸다. 전업주부 중에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아이를 훈육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며 불안감을 느끼는 엄마들이 많다.
올 초 복직 이후 오랜만에 연락하게 된 남자 동기는 “OO(아내)가 자꾸 외롭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돼. 난 일 안 하고 집에 아기랑 둘이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라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아내와의 생각 차이를 말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부모가 된 동기였다. 동기가 언급한 아내의 상황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어떤 심정일지 절절히 와닿았다. 이제 막 복직한 참이라 어제의 내 상황이었던 것이다. ‘외롭고 말고,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어.’

“나도 육아휴직 기간 남편한테 그랬어, 외롭다고. 부인한테 잘해줘”라고 말하면서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외로움을 USB 메모리 카드에 담아 내 남편과 회사 동기의 뇌리에 꽂고 느낌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업주부에 대해 “배우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사는데 뭐가 힘드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생활도 쉽지는 않다. 외벌이 가정의 생활은 밥벌이하는 가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가 다소 비합리적이거나 부당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참거나 배려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내 주변에는 바깥일 하는 핑계로 집에서 물 한 컵조차 따라마시지 않고 아내의 손을 빌리는 한 남성이 있다. 그의 사례에는 경제력에 따른 권력 관계의 모습이 응축돼 있었다. 갑을 관계는 직장이나 외부 생활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사람 사이에선 둘만 모여도 갑이 생긴다는 말처럼 부부 관계에서도 조금 더 이기적일 수 있는 사람이 탄생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타적인 생활을 요구받는 전업주부의 삶이 녹록지 않은 이유다.

육아휴직을 마친 후 내 입에서는 “회사 그만두고 싶어”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내 인내심과 포용력이 부족해서 일 수 있지만, 전업주부로 사는 어려움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생활의 고단함보다 컸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사는데 뭐가 힘드냐”는 말에 이제 내 대답은 “그게 더 힘들더라”가 됐다. “전업주부가 뭐가 힘드냐”며 폄하하는 일부의 인식은 ‘내가 힘든만큼 상대도 힘들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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