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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자바섬에 잠든 고려독립청년당 항일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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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09 21:32:37 수정 : 2017-04-11 15: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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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열의 위업을 거울 삼아 조국 독립의 선봉이 되어 일심동체 결사 투쟁할 것을 자바섬 스모노 산중에서 엄숙히 선언하노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의해 수많은 연합군 포로가 양산됐다. 이들을 관리할 인력이 필요해진 일본은 식민지 조선인 청년들을 포로감시원으로 보낸다. 겉으로는 2년 계약에 월급 50엔을 주겠다며 유인했지만, 사실상 강제동원이었다. 인도네시아 자바로 내몰린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1408명. 낯선 땅에서 이들은 일본군의 멸시와 학대, 온갖 고통에 시달렸다.

1945년 1월 4일 일본군에 대항하여 의거를 일으킨 고려독립청년당 민영학이 총상을 입고 자결한 수수밭.
독립기념관 제공
1944년 12월29일 인도네시아 스마랑시 스모워노 훈련소에서 10명의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은밀히 모였다. 당 선언문과 강령을 낭독하고, 직접 만든 당가도 불렀다. 총령에는 이억관이 추대됐다. 당명은 ‘고려독립청년당’으로 정하고 일본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될 것을 피로 맹세했다. 이 같은 모임은 당시 필리핀과 버마(미얀마)의 독립 선포에 영향받은 바가 컸다. 이들은 암바라와 의거를 일으켜 일본인들을 사살하고 스미레호 탈취계획을 세웠다.

암바라와 의거당 결성 일주일 뒤인 1945년 1월 4일 암바라와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던 손양섭, 민영학, 노병한 등 세 명은 의거를 일으켰다. 싱가포르 전출명령을 받고 이동 중 트럭을 탈취해 수용소로 돌아가 탄약과 총을 빼앗은 뒤, 암바라와 마을 일대를 돌며 일본인 12명을 사살했다. 이들은 급파된 일본군에 쫓겼다.

민영학이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수수밭에 들어가 자결했다. 민영학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은 암바라와 수디르만(Sudirman) 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수수밭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우기 때는 벼를 심고, 건기 때는 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민영학이 자결한 농토 바로 옆에는 일본군의 야전병원이 있었다. 지금은 야전병원 자리에 결핵병원이 들어섰다.

2008년부터 고려독립청년당 12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2014년에는 당원으로 활동했던 안승갑(1922~1987)이 쓴 일기와 자료 등을 모은 ‘낙산 유고’가 발간됐다. 이를 통해 고려독립청년당의 활동상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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