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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대우조선 투자금 날릴 판… 국민 노후 불안 대한민국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신음하던 2015년 6월 말쯤이다. 온 나라가 메르스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개미 한마리도 지나치지 못하게 총력대응하겠다”던 박근혜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희생자만 무려 38명이나 발생했다. 국가 초비상 사태 속에 청와대는 안종범 경제수석 등을 통해 메르스와 전쟁 중인 장수에게 ‘밀지’를 보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가슴 조이며 밀지를 열어봤다. 밀지 내용은 이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잘 챙기라’고. 그는 워낙 휘발성이 강한 사안이어서 머뭇거렸다. 하지만 ‘어명’을 거스를 수 없어 팔을 걷어붙였다. 담당 공무원을 불러 “반드시 합병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엄명을 내렸다. 이에 담당 공무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청와대의 뜻”이라며 닦달했다. 얼마나 보대꼈는지 한 공무원은 나중에 “직을 걸고라도 막으려 했는데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산하의 국민연금공단에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공단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피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같은 해 7월 공단은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의 핵심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안건에 찬성의결권을 행사, 합병은 완성됐다. 문 장관은 청와대라는 몸통의 하수인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로 인해 박영수 특검은 국민 노후의 보루인 국민연금이 최소 1388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했다. 반면 이 부회장 등 대주주들은 무려 8549억원에 달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국민연금이 특정 대기업에 동원되면서 국민은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노후생계비를 도둑맞은 셈이다.


문준식 사회부장
국민의 노후를 팔아넘긴 문 장관은 한 달 만에 메르스 사태의 부실대응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끝이 아니었다. 합병을 성사시킨 공로로 4개월여 만에 자신이 망쳐놓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원성이 자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늦게 국민연금을 축낸 사실이 드러나 구속돼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탄핵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국민 노후생계비인 국민연금이 휘청거리고 있다. 정권 등이 주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손을 대서다. 이로 인해 2200만 국민연금 가입자의 노후가 불안할 지경이다. 덩달아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아닌 국가정책의 자금줄로 동원되는 일이 잦았다. 정부가 멋대로 끌어다 쓴 뒤 막대한 이차손실금을 꿀꺽한 사례도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는 이유다. 총 558조원, 세계 3대 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수십년간 매달 거르지 않고 국가에 맡겨 놓은 노후생계비다. 막대한 혈세를 퍼부어 ‘돈잔치’를 벌이는 공무원연금 등과 달리 수급액은 용돈 정도에 불과하지만 국민의 유일한 노후대책이다. 국가가 보탠 것도 없다. 국민의 노후자금은 또 허우적거리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살리기에 동원돼 투자금 3887억원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해 있다. 게다가 대선이 다가오면서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국민연금활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다간 국민연금이 남아날지 의문이다. 국민연금은 기업이나 정권의 쌈짓돈이 아니라 국민의 유일한 노후생계비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더 이상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손을 댔다간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헌정사상 첫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난 박근혜정권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문준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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