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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편견·부상 슬럼프 딛고 中 마룽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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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0 20:54:48 수정 : 2017-04-20 21: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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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탁구선수권서 단식 준우승 조선족 출신 삼성생명 정상은 지난 14일 중국 우시에서 열린 제23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부 단식 32강전. 정상은(27·삼성생명)의 마지막 백핸드 스트로크를 세계랭킹 1위 마룽(중국)은 당황하며 받아넘기지 못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고질적인 어깨부상으로 800위까지 나오는 세계랭킹에서도 이름이 빠져 있는 잊혀져 가던 선수가 세계 최강자를 꺾는 파란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기쁨에 겨울 만도 했지만 정상은은 담담하게 마룽과 악수를 나눴다. 그에게 아직 남은 경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남자단식에서 한국 선수가 준우승을 한 것도 2000년 김택수 이후 17년 만이었다.

그제서야 정상은은 조금이나마 기뻐할 수 있었다. 편견이라는 벽과 부상으로 인한 긴 슬럼프를 모두 극복해 내고 다시 일어섰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상은은 중국 지린성 옌볜에서 출생한 조선족이다. 6살 터울 누나 아래 귀한 외동아들이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는데 일주일에 2∼3일은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던 어릴 적 기억이 선명하다”고 말한다. 


탁구 남자 국가대표 정상은이 20일 코리아오픈이 열린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상은은 지난 16일 중국 우시에서 끝난 제23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남자 단식에서 세계 1위 마룽(중국)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17년 만에 한국에 은메달을 안겼다.
인천=남제현 기자
아들의 허약체질을 운동으로 바꿔 보겠다며 탁구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 정두헌(60)씨는 6살 정상은에게 라켓을 쥐여줬다. 정상은은 “아버지가 내 키에 맞게 탁구대 다리를 잘라 주셨다. 그렇게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웃었다.

정상은은 중국 북반부대회 13세 이하부에서 우승할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 김난(59)씨가 한국 여행사에 취업하면서 부모님과 생이별한 것이 탁구 인생의 첫 고비였다. 정상은은 “부모님을 1∼2년에 한 번 겨우 만났다. 사춘기 때라 극단적이 되더라. 같이 안 살면 탁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부모님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2005년 정상은도 한국에 정착했다. 처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언어 소통도 어려웠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어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 힘겨웠다”고 말했다. 물론 조선족에 대한 편견도 버텨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1년의 한국 적응기를 거친 뒤 동인천고에서 다시 탁구로 돌아오자마자 주머니 속 송곳처럼 그의 실력은 숨길 수 없었다. 


정상은은 2006년 출전한 일본 기타큐슈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7년 쿠웨이트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는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탁구의 미래로 꼽혔다.

잘나가던 때 부상의 시련이 찾아왔다. 정상은은 “고3 때인 2008년 심하게 운동한 뒤 어깨를 돌릴 때 소리가 나서 진단을 받아보니 근육 손상이었다. 그 후 슬럼프가 주기적으로 왔다”고 밝혔다. 그래도 2009년 삼성생명 탁구단에 입단하면서 운동과 재활을 병행하며 꾸준히 달려왔고 인천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따낸 후에는 세계랭킹이 30위권까지 올라왔다.

그렇지만 아시안게임 직후 부상은 더욱 심해졌고 좌절도 컸다. 정상은은 “은퇴하겠다고 팀을 나온 적도 있을 만큼 심각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그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가장 큰 힘이 된 이는 한 살 연하 여자친구다. 정상은은 “항상 뒤에서 응원해 주고 힘이 돼 줬다. 올림픽에 나가는 걸 꼭 보고 싶다고 한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여기에 “이철승 삼성생명 감독님도 보강운동과 체력운동 등을 신경 써서 잘 조절 해주셨다. 어깨 부상은 이제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응원 속에 정상은이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각오로 나선 것이 바로 이번 아시아선수권이었다. “이젠 나도 베테랑에 속하는데 아직도 할 수 있고, 젊은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견딘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다”고 당시의 비장함을 설명했다. 그런 마음으로 마룽이라는 큰 산을 무너뜨렸다. 정상은은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이긴 날 밤은 좋아서 잠이 안 오더라”며 속마음을 살짝 내비쳤다.

그래도 정상은은 “아직 긴장의 줄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18일부터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개막한 코리아오픈에 곧바로 출전하는 강행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상은의 눈은 5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발표될 세계랭킹도 궁금하다. 그렇다고 과욕은 부리지 않는다. 그는 “이번 아시아선수권도 매 경기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임해 2등까지 했다. 세계선수권도 차근차근 한 경기씩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다.

마지막으로 정상은은 조선족 출신으로서 겪었던 편견에 대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에 댓글에 편견이 담긴 악플이 많다. 출신을 따지긴보다는 그가 어디를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알아주면 좋겠다. 응원해 주시는 국민들께 감사하고 앞으로 악플 다시는 분들도 응원해 주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차별의식은 내가 잘하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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