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들에게 꽃 한송이 받는 것도 법에 걸리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첫 스승의 날을 맞는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의 표정이 어수선하다.
‘사제 간의 정’을 표현하는 작은 성의조차 법률로 재단해야 하는 것인지를 푸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고민하기도 한다.
우선 교단부터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학생 김보현(25·여)씨는 “교수님이 한 달 전부터 스승의 날 선물은 준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사립대의 학과 대표를 맡고 있는 서모(23)씨도 “학과 차원에서 진행하던 스승의 날 행사를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부모들이 과한 선물을 할 때 거절할 변명거리를 궁리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반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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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꽃 직거래 장터의 판매대에 등장한 포스터. 이 포스터에는 `꽃 선물 주고 받아도 OK`라며 청탁금지법 이후에도 꽃 선물은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학부모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를 두고 있는 강지은(37·여)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누구네 엄마가 뭘 줬다 하는 말이 나오면 나도 뭔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불안했는데 이젠 그런 게 사라졌다”며 홀가분해했다.
하지만 정말 선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모(41·여)씨는 “꼭 스승의 날이 아니더라도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야 하는 건 아닌지 엄마들과 상의를 했다”며 “아이들 학교 생활에서 선생님의 역할이 워낙 크니까 엄마들로서는 이것저것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학부모들의 절반 이상이 스승의 날이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14일 잡코리아·알바몬이 최근 직장인 1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중 자녀를 둔 368명의 53.5%가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김영란법은 부정청탁뿐만 아니라 금품수수도 금지하고 있다”며 “꽃 한송이라도 금품에 해당돼 금지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 교감은 “학생들이 뭔가를 청탁하기 위해 선생님에게 꽃을 주는 것이냐”며 “이 같은 방침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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