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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남자도 무서워 떠는 공중곡예, 끝까지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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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2 06:00:00 수정 : 2017-06-01 20: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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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타일 스키 에어리얼 여자선수 1호 김경은 신장 158㎝의 작지만 제법 다부진 체구. 그런데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호호홍’ 하며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내는 모습이 아직 영락없는 소녀다. 최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스키협회 주최 ‘스키인의 날’ 행사장에선 이처럼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선수가 있었다. “평창 올림픽에서 깜짝 선전을 기대해 달라”고 당차게 말하는 프리스타일 스키 에어리얼 여자선수 1호 김경은(19·송호대)이다.
프리스타일 스키 에어리얼 국가대표 김경은(송호대)이 지난달 중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나답게 찍어 달라”며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언뜻 듣기에 생소한 에어리얼은 기계체조의 ‘도마’ 종목과 비슷하다. 슬로프를 미끄러져 오다가 마치 도마에서 도움닫기를 하듯 점프대에서 도약해 공중곡예를 선보인다. 채점기준에서 곡예 스타일과 동작의 정확도는 무려 50% 비중을 차지해 사실상 메달 색깔을 결정짓는다. 이 때문에 선수층이 탄탄한 중국, 벨라루스 등에선 일찌감치 기계체조 유망주를 에어리얼 종목으로 전환시켜 세계무대를 호령하고 있다.

불과 지난해까지 기계체조 선수로 활약하던 김경은이 짧은 시간에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김경은은 지난 2월 국제스키연맹(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 에어리얼 여자부 예선에서 20위에 오르며 자력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 당시 뒤로 한 바퀴 도는 백레이 기술을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김경은은 중·고교 무대를 휩쓴 기계체조 유망주였다. 그는 지난해 8월 체조 스타 양학선을 길러낸 조성동(70) 에어리얼 대표팀 감독이 “반드시 빛을 보게 해주겠다”고 설득해 스키를 처음 신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스키가 점차 발에 맞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칭찬도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점프대에서 무려 15m를 날아올라야 하는 극심한 공포감과 여자 선수는 단 1명뿐인 척박한 훈련 환경에서 버텨내기란 쉽지 않았다. 현재 국내 에어리얼 등록선수도 김경은을 포함해 3명밖에 없다.

김경은은 “예전에 있었던 남자 선수들도 잦은 부상과 공포감으로 대부분 그만뒀다. 여자 선수는 원래부터 나 혼자였기 때문에 외로움에 익숙하다. 다만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이 떠나면 마음이 허전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여자선수 1호라는 타이틀에 자부심도 크다. 동료 선수들과 경쟁의식을 갖고 다투는 일이 없다는 데 위안을 삼고 싶다”며 애써 웃어 보였다.

선수들에게는 으레 ‘왜 운동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이 붙는다. 김경은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자 “앉아서 공부하는 게 허리도 아팠고 적성에도 안 맞았다”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어릴 때부터 남달리 운동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른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라 먹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할 때 제일 괴롭다고 한다. 김경은은 “여자로 왜 태어났을까 원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식단 조절이 힘들다. 그렇지만 기왕 시작한 운동 끝까지 가보고 싶다.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간의 고생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 김경은은 대학 생활과 훈련을 병행하며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경은은 친구들과 추억을 쌓고 싶은 마음이 커 평범한 여대생으로 지내고 싶을 때도 많다고 했다.

사실 그는 기계체조 선수 시절 허리에 심한 통증이 오는 ‘압박 골절’ 부상을 당해 점프를 할 때마다 허리가 눌리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김경은의 말을 빌리면 살짝 삐끗해도 그대로 경직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경은이 운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에게 떳떳한 누나가 되고 싶어서다. 동생 김경준(17·서울체고)군은 누나를 따라 기계체조를 시작했다. 당장의 고난에 운동을 그만둔다면 자신을 믿고 따라온 동생을 볼 낯이 없어 하루 3차례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견딘다. 김경은은 “동생이 옆에서 꿋꿋이 운동해준 덕분에 평창에 나갈 수 있었다. 에어리얼은 고난도 묘기가 많아 관중에게 시원한 느낌을 안겨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평창 올림픽 결선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며 각오를 다졌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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