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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공평한 관찰자와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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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5 21:19:45 수정 : 2017-06-05 21: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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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타인의 공감은 늘 미미한 수준”
내 안 중립적 관찰자 간절하게 호명할 일
흔히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천에 대한 탐구인 ‘국부론’을 발표하기 전 ‘도덕감정론’을 출간했다. 사회철학 입장에서 인간 행위와 인식, 윤리와 사회적 조화 가능성 등을 모색한 이 책은 ‘국부론’의 경제담론의 철학적 기초로서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구체적 현장에서 참조할 수 있는 윤리학적 성찰로 주목된다. 스미스가 보기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열정과 행위를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런 방향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국부론’을 통해 우리가 이해한 대목인데, 이 논리의 기초를 우리는 ‘도덕감정론’에서 확인하게 된다.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와 사회 전체의 이익의 조화 가능성의 기초는 ‘공감’ 능력이다. 인간은 기쁠 때나 슬플 때 타인과 감정을 교류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한다. 특히 슬픈 상황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인간적인 것의 토대다. 타인의 감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개인은 제 감정을 억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슬픔이나 고통을 경험한 주체와 주위 사람의 감정이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다. 최대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공감한다 하더라도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의 공감은 늘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고 스미스는 말하거니와, 그러기에 공감의 기초인 ‘상상 속 입장의 교환’인 역지사지의 진정성은 매우 중요하다. 각자 자신의 이기성과 역지사지의 불충분함을 시인하고 더 충실한 입장의 교환을 상상하는 것이 인간의 품격이나 윤리에서 중요하다고 스미스는 강조한다.

물론 그렇게 노력해도 두 사람의 감정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동음이 아닌 협화음이더라도, 그런 윤리적 노력이 사회를 조화롭게 하는 데 기여한다. 그 협화음을 위해 개인은 저마다 ‘공평한 관찰자’를 발견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다. ‘도덕감정론’에 따르면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판단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 ‘상당히 공평하고 공정한 인물, 즉 자기 자신에게나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여러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나 아무 특별한 관계를 갖지 않은 인물의 눈앞에서 행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관찰자, 곧 ‘중립적인 관찰자이자 우리의 행동을, 우리가 타인의 행동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이해관계가 없이 고찰’하는 공평한 관찰자가 판단과 행위의 적정성을 제고할 수 있으며, 그 공평한 관찰자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때 사회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타인을 위해 많이 공감하되 자신의 이기적 추구는 억제하는 것, 이를 위해 공평한 관찰자를 잘 작동시키면 인간은 품위와 적정성을 유지할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대로 ‘인류가 가진 다양한 감정과 정념의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스미스의 논지를 따라가다 문득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현상을 떠올렸다. 굳이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갈등 얘기 같은 것을 하지 않더라도, 내로남불 현상은 때때로 공평한 관찰자의 실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실종되면 긍정적 맥락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품격 있고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가능성도 아득해지지 않을까. 우리 모두 내 안의 중립적 관찰자를 간절하게 호명할 일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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